▲ 이명훈
예술공간 돈키호테
기획연구팀장
이런 저런 행사에 초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나는 관이나 관변단체가 주관하는 문화행사에 가급적 참석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본 행사에 앞서 펼쳐지는 의전 때문이다. 어떤 행사에서는 의전이 너무 지나쳐 불쾌감까지 느낀 적도 있다. 행사 참석자들이 앉는 자리부터, 소개 순서가 정해지고, 축사니, 인사말이니 개회사니 하는 행사 앞부분에 전개되는 식순이 행사의 주제나 내용과는 무관하게 장황하다.

최근 순천시에서 주관한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역시나 의전이 시작되었다. 시장의 축사, 의장의 축사, 또 누구의 축사 등등. 그들은 많은 시민이 보는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꼿꼿하게 연단에 올라서 서로를 치켜세우며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그리곤 하나 둘 빠져나간다. 비단 관에서 주관하는 행사뿐만 아니라 민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도 의전의 행태는 비슷하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도 달라졌다고 하는데, 의전은 왜 이렇게 변하지 않을까?

나는 의전을 꼰대문화의 대표적인 전형이라고 본다. 꼰대들은 의전에 살고 의전에 죽는다고 할 정도로 의전을 중시한다. 의전은 꼰대들의 정치가 문화적으로 표현된 경우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의전은 그 사회의 정치는 물론 문화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표본으로 삼을 수 있다. 그리고 꼰대들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게 하는 징표가 된다. 의전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VIP’, ‘VVIP’라는 용어도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불쾌하기 그지없다. 결국 그들을 위한 의전이라는 것도 생각해볼수록 민주주의에 반하는 문화인 것이다.  

20-30대 청년의 미래가 어둡다는 진단과 보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편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예측은 가혹하다 못해 잔인한 일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세대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해지고 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상징되는 무능한 국가를 비롯해 국가권력을 잡으려는 데에만 열중하는 정치인들은 물론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기성세대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자신의 실체를 보여 주었다. 자신들의 안녕과 이익을 추구하는 데 혈안이 되었을 뿐, 다음 세대에 대한 보호나 책임감은 찾아 볼 수 없다. 더욱 더 참담한 것은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것이다. 뻔뻔하고, 뻔뻔하고, 또 뻔뻔하다. 나잇살, 그 주름에 감춰진 것은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가 아니라 뻔뻔함과 부도덕이고, 불통에 근거한 권위이며 잡다한 잔꾀와 치사한 수작들이었던 것이다.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뻣뻣하고 꼿꼿하기만 한 기성세대, 그 꼿꼿함이 지나쳐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기득권들을 싸잡아
‘꼰대’라고 부를 수 있다.

또 하나의 꼰대는 소통이 안 되는, 꽉 막힌 보통의 나이 많은 어른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 일상 가까이에서 이런 꼰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꼰대는 기본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자기 결론과 결정만 있을 뿐, 대화를 통한 상호 이해와 설득의 과정이 없다. 명령과 지시가 있고 치사한 협박이 있을 뿐이다. 한마디도 대화가 안 된다.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서슴없이 자랑하고 강자에게는 아첨하고 약자는 누르려 한다. 우리는 확실히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불통의 심화는 독재시대로 귀결될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독재 가능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집단에서, 지역에서 꼰대들과 더불어 살고 있다. 불편한 동거가 아닐 수 없다.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더 심기가 불편하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현은 어른들에게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꼰대와 공생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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