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일) 태고종의 종정을 모신 선암사에서 승려들과 사랑어린배움터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의 축구 시합이 벌어졌다.

 
선암사와 선암사의 말사인 용화사, 향림사, 다연사 등 절집 식구들 한마당잔치에 해룡면에 있는 대안학교인 ‘사랑어린배움터’가 초대를 받은 것이다. 와온 용화사 주지인 상종스님이 사랑어린배움터 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제공하면서 교류가 시작되어 이날도 함께 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해룡면의 옛 농주분교에 자리한 ‘사랑어린배움터’는 이현주 목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김민해 목사가 교장으로 있다. 김민해 목사와 상종스님이 이웃으로 만나 교류하면서 용화사 신도들과 학교 구성원 사이의 만남도 더 풍성해지고 있다.

선암사 가는 길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부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연등에서 파랗고, 노랗고, 빨간 물감이 되어 뚝뚝 떨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연등은 끝이 보이지 않게 이어졌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절 마당, 화단이 온통 꽃 무더기다. 비를 맞은 수국은 긴 머리에 하얀 원피스를 입고 초록의 보리밭을 뛰어가는 스테파네트처럼 보인다. 가늘게 내리는 빗줄기는 겨울밤 소담스럽게 내리는 눈처럼 소리도 없이 살짝 내린다. 사람들은 오늘을 추억하는 사진을 찍는다. 매화나무가 둥그런 터널을 만들자 그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내가 이상하게 나왔어, 다시!” 몇 번을 찍고 또 찍고 확인한 뒤에야 “됐어!” 다음 장면으로 향한다. 그 모습을 오래된 매화나무가 내려다본다. 빗줄기는 점점 더 가늘어지고 공기는 더 맑아지고 법당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도를 한다. 저마다 마음으로부터 울림을 따라서 혹은 그 울림을 마음에 담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사람들의 기도는 잠깐 끊어졌다가 이내 다른 사람으로 이어진다.
 

대웅전 앞의 흥겨운 노래잔치

선암사 곳곳의 아름다움을 즐기며 비빔밥으로 점심 공양을 끝낸 사람들이 대웅전 앞으로 모여든다. 대웅전 앞 만세루에서는 흥겨운 노래잔치가 열리고, 괘불이 내려다보는 무대자리에는 미라볼, 사이키 조명이 돌아간다. 전문 MC가 타고난 재주로 재미나게 노래자랑을 진행한다. 각 절을 대표해서 두 팀씩, 사랑어린배움터에서도 두 팀이 참가했다. 심사위원이 맨 뒷줄에 앉아서 점수를 매기는데,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점수표를 슬쩍 봤더니 음정, 박자, 가사, 각 30점, 무대 매너와 관객 호응도가 10점, 모두 합쳐 100점 만점이다.

무대에 나온 사람들의 등 뒤로는 커다란 괘불이 든든하게 비추고, 학승들의 강학 장소에는 사이키조명이 돌아간다. 대중가요가 선암사 경내를 떠들썩하게 울리는 동안 모두가 신명 난 얼굴이다. 스님들은 대중과 어울려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속 모르는 사람이 보면 ‘도대체 이 사람들 뭐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방식으로 어울리는 일이라 생각하면 참 재미난 풍경이다. 축하 무용을 끝으로 점수가 집계되는 동안 천천히 축구장으로 이동했다. 축구시합이 끝날 때 경품과 시상을 한단다. 오늘은 경품 복이 한 번도 없었던 운명에 굴하지 않고 미리부터 경품에 군침이 돈다.
 

어깨 밀치고 넘어지는 축구경기

선암사와 다연사가 예선전을 치르고, 사랑어린배움터와 용화사가 예선전을 치른 뒤 이긴 팀끼리 결승전으로 최종 우승팀을 가린다. 선암사는 스님들로 구성되었고, 용화사와 다연사는 신도들로 구성되었다. 다들 축구화도 갖추고 준비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인다. 선암사와 다연사 간 경기에서는 다연사가 이겨 결승에 진출했다. 사랑어린배움터 팀과 용화사 팀이 그 다음 축구시합을 펼친다. 스님들과의 축구경기에 사랑어린배움터 아이들과 학부모가 총동원 되고, 엄마들이 열띤 응원전을 펼친다. 선수들이 운동장을 가르며 투혼을 불사르는 동안 관중은 손에 땀을 쥐며 응원을 했지만, 땀 흘린 노고와 무관하게 무승부다. 승부차기로 이어졌는데, 승부차기에서도 사랑어린배움터의 준서가 넣은 한 골이 유일한 득점이었다.

 
 
아이들도, 부모들도, 스님들도 모두 땀이 범벅이 되도록 뛰었다. 어깨를 밀치고, 넘어지고, 밟히면서 이제 더는 못 뛸 거 같은 호흡 곤란증세까지 왔다. 축구공에 맞을까 움찔하기도 했지만 헛발질에 웃고, 넘어질 때 서로 토닥여주는 멋진 경기였다. 웃고, 떠들고, 호흡 가쁘게 뛰며, 부처님 마당에서 노니는 한마당이었다.
 

서로의 방식으로 어우러진 한마당

노래자랑과 축구경기를 마치고 선암사 풍경에 취해 절을 내려가는 길에도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다. 색색의 연등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마음이 담겨있다. 어디에 사는 아무개의 “마음을 담아서 연등을 답니다”는 이름표가 붙어있다. 어쩌면 번지수까지 적어서 달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부처님의 자비가 혹시라도 나를 못보고 지나가면 어쩌나 하는 애달픔 때문이었을까? 저 연등이 세상 어느 골짜기, 어느 골목, 어떤 사람들의 어둠이라도 밝게 비춰주기를 빌어본다. 저 멀리 어느 곳, 어느 골목 몇 번지에 사는 조 아무개에게도 복을 주시기를 생각하며 웃는다. 사람들은 절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고, 절에 있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웃고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부처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바람결에 차창으로 후두둑 떨어질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부처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잠시 두 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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