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형배
광양시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푸르름이 짙어가는 4월, 세찬바람과 함께 봄비가 자주 내립니다. 1년 전의 그날도 그랬습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날은 희망이 있었습니다. 살아올 수 있을 거라는... 시신을 살피며 내 자식이 아니었으면 했던 절박하고 이기적인(?) 희망이나마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신이라도 확인해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실종자 가족의 피눈물 나는 절망으로 변했습니다.

지금 40~50대들이 청춘이던 4월은 진달래꽃, 그리고 4·19혁명 기념과 함께였습니다. 1960년 그날, 서울에서만 130명이 죽고, 10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시위가 점차 거세지자 일주일 만인 4월 26일, 이승만은 하야를 선언합니다. 부정선거로 대통령에 오른 이승만 정권을 국민의 힘으로 하야시켰습니다. 민주주의가 승리한다는 증거이자 자부와 긍지의 위대한 4월이었습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2014년 4월은 슬픔과 비통의 4월로 바뀌었습니다. 총칼이 아닌 탐욕과 무책임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304명의 희생자와 실종자들의 넋들로 대한민국의 4월은 잔인한 4월로 변했습니다.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해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세월호는 누군가의 말처럼 한 시대 전체의 도덕적 침몰과 국가 기능 파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2015년 4월도 그 슬픔과 비통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고 당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대한민국의 적폐 해소와 국가 개조를 약속했습니다. 악어의 눈물이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믿고 싶었던 국민이 더 많았습니다. 국가 개조란 진심어린 반성과 뉘우침에서 시작하는 고통스런 실천과정을 생각한다면, 헛된 기대임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믿지 않는다 한들 어쩌겠냐는 무기력과 체념이 더 솔직한 고백일지 모릅니다. 저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동안 우리가 목격한 것은 유병언 추격전(?)과 해경 축소 뒤 국민안전처 신설, 사람들에게 세월호를 기억에서 한시라도 빨리 지우려는 편향된 방송과 정치권의 임기응변,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한 다수의 침묵 뿐이었습니다. 여전히 세월호와 실종자들은 차디찬 바다 속에 있습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의 피눈물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교묘하게 세월호 피로증을 확산시키더니 급기야 유가족의 단식투쟁 앞에 폭식투쟁이라는 야만을 보여주었습니다.

돈이라는 탐욕에서 시작된 세월호 비극의 탈출구는 돈이 아니라 진실규명이라는 유가족의 피맺힌 절규를 새겨야 합니다.

얼마 전 한 후배가 노란 리본 하나를 직접 가슴에 달아 주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가슴 위 노란 리본을 보고 일부에선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고 합니다. ‘지금까지 뭐했는데, 무엇이 달라졌는데’라는 그 후배의 한 줄 글이 무엇보다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억울한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께, 잊지 않으마”라는 1년 전 눈물 속의 약속과 다짐을 기억해보면 아프고 부끄럽고 슬픈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노란리본이라도 달고 다녀야겠습니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라는 위안으로 삼으렵니다. 그리고 왜 진상규명을 바라는 분들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반대하는지도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묻겠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끝으로 한 희생자의 어머니의 말씀을 옮겨봅니다. “봄이 오면 봄을 지우고, 꽃이 피면 꽃을 지우고 싶다” 비단 희생자 가족만의 심정은 아닐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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