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범상치 않은 삶이 있다. 20대에 ‘거지방랑’을 했고, 9년 동안 결핵요양소 ‘한산촌’ 촌장을 했으며, 민중 신학자로 순탄치 않은 역경을 헤쳐온 송기득교수. 그런데 여태까지의 생애만큼 유별난 노부부의 ‘인생 송별 잔치’가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다. 100년보다 5년 어린 부인을 그보다 11년 어린 남편과 17년 어린 딸이 함께 돌본다. 부인은 치매이고 남편은 중풍을 겪었으며 딸은 관절염으로 온몸이 편치 않다. 3명의 환자가 서로를 ‘나’로 받아들이며 한 집에서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중이다.

송 교수가 순천광장신문에 연재한 글을 정리하여 ‘신학비평사’에서 펴낸 [아내의 수난과 인생송별잔치]에서 이들의 특별한 잔치를 소개한다. 폼을 내지 않은 책의 모양새만큼 속의 내용도 요즘 세태와 달리 소박하다. 또,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솔직함이다. 송 교수는 아들이나 며느리, 딸 등 가족에 대한 서운함을 거리낌 없이 들춰 보인다. 그리고 병원, 의사, 간호사, 간병인의 모습을 노학자의 마음에 비친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의 불편한 심사가 체면이나 위신이라는 필터로 여과되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난다.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문제점을 체험하면서 그는 ‘사람다움’에 대한 고민을 쉬지 않는다.

 
사람다운 삶은 가정에서부터 구현된다. ‘아기 할머니’라 부르는 부인에게 큰절하는 남편의 인생 막바지가 천지에 노을이 물들듯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이 부부가 노는(?) 모습은 참 유별나다. 책을 읽다 눈을 감고 그 모습을 그려 보아도 손발이 오글거린다. 하기야 송 교수는 하나님을 섬기는 단계에서 벗어나, 어버이 하나님과 함께 노는 경지에 이른 분이니 부인과는 말해 무엇하랴!

여기에 오글거림의 끝판왕이라 여겨지는 일화를 소개한다.
“요즈음에는 밥 먹으면서 색다른 의례가 생겼다. 전에도 어떻게든지 많이 먹이려고 쓰던 수법인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아내가 죽을 다 비우거나 영양 음료 한 컵을 다 마시면 서로 마주보고 손뼉을 친다. 과일 한 쪽을 더 먹으면 볼에 뽀뽀를 해준다. 어쩌다 삶은 달걀을 두 개나 먹으면 가서 껴안는다.”

한의학에 상생의 관계라는 것이 있다. 상생은 대기업의 허울 좋은 구호가 아니다. 상생의 관계란 서로가 서로를 낳고 길러주는 관계를 말한다. 이 부부가 그렇다. 젊었을 때 다른 사람이 연탄 3장으로 이틀을 살지만 부인은 한 장으로 3일을 버티며 남편을 살렸다. 이제 남편이 부인을 살리고 있다. 그냥 산소호흡기 꽂고 영양제 밀어 넣으며 목숨만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병원이 아닌 자신의 집에서 아름다운 삶을 함께 이어가는 것이다. “여보! 우리에겐 헤어짐이란 없어요. 그곳이 어디든 영원히 한 몸으로 있을테니까”라며 서로를 동일시한다.

송 교수는 부부가 서로를 동일시하듯 삶과 죽음도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죽음이란 하늘을 떠도는 흰구름이 조용히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어떤 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죽음이 삶과 이름만 다를 뿐 별개가 아님을 강조한다.

이 책의 말미에 송 교수는 “이날까지 나는 마음과 힘과 정성과 뜻을 다해서 아내를 나의 ‘너’로써 받들고 섬기면서 정성을 다하려고 애써 왔다. 우리의 마지막 송별을 ‘기쁘고 즐거운 잔치’가 되도록 힘쓰고 있다”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것을 글로 알리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에 하나의 길잡이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므로 함께 살기를 바라는 부부나 가족이라면 일독하여 이 노부부와 닮기를 소망한다.

민들레하나한의원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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