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근혜
더드림실버타운 대표
필자는 2010년 3월에 실버타운을 개원하여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시설개원에 앞서 노인시설에 대해 알아보니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분이나 기초생활 수급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관은 많지만 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분이나 수급자가 아닌 노인들이 갈만한 시설이 순천에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혼자살기에는 어렵고 가족들이 모실 형편은 안 되는데 수급자도, 장기요양등급지정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은 말 그대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고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위한 곳으로 시설특성을 정했다. 5년째 실버타운을 운영하면서 많은 인연들을 만났고 진정한 복지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으며 걸어왔다. 이 지면을 통해 그 인연들을 풀어놓고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가보려고 한다.

개원초기의 어느 날, 인근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어르신 한분이 계신데 시설로 모셨으면 좋겠다는 복지업무 담당자의 얘기를 듣고 동사무소로 달려갔다. 그런데 직원 두 분이 큰 비닐봉지를 챙기고 고무장갑을 준비하고 나왔다.“뭐에 쓰시려구요?” 하고 묻자 “가보시면 알아요”하며 앞장을 선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는데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나기 시작했고 곧 그 악취의 근원지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한분이 누워있는 작은 방에서 나는 냄새였다. 왜 고무장갑과 커다란 비닐봉지가 필요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잘 걷지 못하는 할아버지는 움직이는게 힘들어 누운 자리에서 대소변을 보고 하루 한 끼 배달되는 도시락을 세끼 나눠 드시며 살고 계셨다. 동사무소 직원들이 자주 들러 목욕도 시켜드리고 방도 치워드렸지만 해결책이 될 수 없었고 보호자가 외국에 있어 연락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할아버지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시설입소라고 판단한 상황이었다. 대충 짐을 챙겨서 차에 커다란 비닐을 깔고 할아버지를 태워 시설로 향하는데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악취가 심했다. 게다가 말을 시키면 버럭 화를 내시며 “그런 건 왜 물어, 네가 뭔데 그런걸 알려고 해, 시끄러워, 입 다물어.”하신다. 몇 번 대화를 시도하다 포기하고 일단 시설로 모시고 가니 직원들이 모두 도망을 가버린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시설로 오면서 ‘오늘 천사가 나를 만나러 왔구나’ 싶었다. 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추한 모습으로 날 만나러 온 천사...  직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욕실로 들어가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다. 기저귀도 차지 않은 상태에서 누운 채로 계속 대소변을 보셨기 때문에 바지에는 대변이 가득 차 있었고 찝찝하고 가려우니 손으로 긁어 손톱 사이사이에도 변이 까맣게 끼어있었다. 세 번 정도 비누칠을 하고 면도를 한 후 손톱을 깎아드리니 냄새가 좀 덜났다. 손톱 밑에 낀 변은 아무리 씻어도 빠지지 않아 이쑤시개로 파내야했다.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자 씻는 내내 욕을 하고 악을 쓰던 할아버지가 얌전해지더니 “고맙습니다, 땡큐”라고 아이처럼 맑게 웃으며 말하는데 매우 귀여우셔서 나도 함께 활짝 웃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할아버지는 시설에 오래 계시지 못하고 앓고 계시던 간질로 인해 병원으로 옮긴 뒤 얼마 안 되어 홀로 임종을 맞이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이 온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은 죽음과 전혀 상관없는 듯, 천년만년 살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더 많이 가지려하고 더 높아지려고 하며 끝없는 욕심에 자신을 가두면서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 채 살다가 떠나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대학까지 나온 수학자로 유명한 분이셨다고 한다. 대쪽 같은 성미에 주변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이 홀로 떠난 그분을 보면서 삶이란 무엇인지 물어보게 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내 삶에 물음표하나 던져주고 아이처럼 천진하게 웃으시며 떠난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말해본다. 고맙습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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