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희
지리산권문화연구원
여순센터 소장
‘여순사건’이란 명칭에 대해 생각해보자. ‘여순사건’이란 명칭을 쓰고 있지만,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여순반란사건’ 또는 ‘반란사건’이라고 한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사람의 입에서는 그냥 쉽게 반란사건이라고 부른다. 내포된 의미도 있지만, 그동안 들어왔던 말에 익숙한 탓도 있다. 

여순사건이 발발한 뒤 정부의 첫 발표는 10월 21일에 있었다. 당시 이범석 국무총리의 발표가 각 신문에 보도됐다. 당시 여순사건은 ‘국군 제14연대 반란’이라는 명칭이 가장 많이 쓰였다. 그러나 곧바로 ‘여순반란사건’ 또는 ‘전남반란사건’으로 신문에 보도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여순반란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 1948년 자유신문 기사이다. 당시 반군의 경로를 지도로 표시해 보도했다.

현대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명칭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주로 ‘여순사건’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연구자마다 ‘14연대 반란사건’, ‘여순병란’, ‘여순군란’, ‘려수군인폭동’, ‘여수폭동사건’, ‘여순내란’, ‘여순사건’, ‘여수‧순천10‧19사건’, ‘여순봉기’, ‘여순항쟁’ 등으로 부른다. 용어의 다양성은 그만큼 사건의 성격 규정이 매우 복잡함을 의미한다.

‘여순사건’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명칭은 없다. 다만, 국사 교과서에서 서술한 용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형태이다. ‘여순사건’이 국사 교과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76년이었다. 당시의 용어는 ‘여수ㆍ순천 반란사건’이었다. 이를 줄여 통상 ‘여순반란사건’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반란의 주체를 여수와 순천의 지역주민으로 규정하는 것이라는 반발이 있었다. 지역사회에서는 1988년부터 명칭 변경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교육부는 1995년 2월 21일에 그동안 사용한 ‘여순반란사건’을 ‘여수‧순천 10‧19사건’으로 공식 확정하여,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표기하기로 했다. 이를 줄여 ‘여순사건’이라고 현재 부르고 있다. 명칭 변경 과정에 당시 여당 대표였던 김종필의 강력한 반대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교육부는 ‘역사’ 맥락에서 명칭을 변경했지만, 軍 관련 발간자료와 보수우익의 연구자 또는 발간물에는 여전히 여순반란사건으로 지칭한다. 그리고 반란의 주체도 일부 군인과 지역주민으로 여전히 호도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지역 주민들은 ‘여순반란사건’ 또는 ‘반란사건’으로 부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부분이 명칭에 있어 핵심이다. ‘여순반란사건’이란 명칭에는 이승만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여순사건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사건을 지역주민에게 전가하기 급급했다. 이범석 국무총리와 김형원 공보처 차장은 ‘반란’의 책임과 주체를 지역주민으로 간주했다.

이번 반란사건의 성격은 여수14연대의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데 민중이 호응한 것 같이 일반은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전남현지에 있는 좌익분자들이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소련의 10월혁명 기념일을 계기로 일대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음모에 일부군대가 합류한 것이 되는데 그 실증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서울신문』, 1948년 10월 29일)

14연대 반란에 지역주민들의 동조ㆍ호응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는 현지의 민중이 일으킨 음모에 일부군대가 합류했다고 사실을 왜곡했다. 군대 내의 반란이라는 자체가 이승만 정권에게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그리하여 정부 내각에서는 책임회피를 위해서 민간인이 주도한 반란으로 언론에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왜곡과 책임 회피를 위해  ‘여순반란사건’이라는 명칭이 탄생했고, 고착화됐다.

‘여순반란사건’으로 명명된 이후 전남 동부지역은 ‘빨갱이’ 또는 ‘빨갱이 지역’으로 국민에게 선전ㆍ홍보됐다. ‘반공 국민’이 애국자란 인식, 즉 여순사건 이후 ‘반공주의자=민족주의자=애국자’란 의식이 확고하게 구축된 과정에 전남 동부지역은 ‘비국민’으로 낙인됐다. 그리고 ‘빨갱이=공산주의자=비국민’은 ‘여순반란사건’으로 연결되었다. ‘여순반란사건’ 명칭 탄생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이제 명칭은 독자에게 그 몫을 넘긴다. 독자들께서 글을 읽어가면서 어떤 명칭이 가장 적절한지 판단을 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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