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산초 학생들의 표현이 연극, 그림책 만들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송산초 학생들의 표현이 연극, 그림책 만들기 등으로 다양해졌다.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와 관계 맺기의 시작이며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본다는 것은 그를 공감하기 위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송산초 여순10·19교육과정을 돌아보니 정리되는 생각이다. 송산초 학생들은 지난 2019년 여순사건 실화가 바탕이 된 소설(‘잊을 수 없는 과거’)을 발간하였고 이후 후배들이 원작 소설을 각색하여 2021년부터 올해까지 3년째 연극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5,6학년들은 주제통합프로젝트 수업에 참여하며 해가 바뀔 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오래전 그들의 이야기를 경험하고 연결되기 위한 과정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2021년 송산초는 미래형혁신학교로 지정되어 다양한 교육적 상상력을 실현하기 위한 고민들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원작 소설 발간을 함께 하셨던 선생님께서 “선배들이 남긴 원작을 각색해서 연극공연을 해보면 어떨까요?”라는 제안을 하셨다. 당시 5,6학년군에서는 프로젝트수업도 자신들이 배우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여 배울 수 있게 해봤으면 하는 기초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여순 연극공연도 여러 후보 주제 중 하나였다. 몇몇 관심을 보이고 해보고자 하는 친구들이 모여 극단 ‘1949’를 만들게 되었고 연극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원초적인 문제가 있었다. 연극 자체가 워낙 전문적 분야이기에 교사들의 열정만으로는 지도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멀리 구례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선생님의 도움으로 첫해 발을 내딛게 된다.

처음은 늘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첫걸음도 무겁고 더뎠다. 원작 소설이 있다지만 희곡을 만들기 위한 각색의 과정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케 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아이들은 방학임에도 만나서 그 과정을 견뎌냈다. 처음 해보는 어색한 말투와 표정. ‘목각인형’ 마냥 경직된 몸들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당시 연극수업을 담당하셨던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기억난다. 

“프로젝트 학습의 결과물을 크게 가져봅시다.”

우리의 배움을 뽐내고 자랑하는 수준이 아닌 배움에 임하는 자세나 태도를 더욱 공고히 해주기에도 큰 무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어색했던 아이들도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무대에 선다는 것에서 책임감도 느끼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교육적 상상력으로 충분히 고민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상을 실현하기 위한 걸림돌들이 너무 많다.(하나하나 설명하기 많고 어렵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와 순천시청, 순천교육지원청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도움이 필요한 부분들을 공유하고 요청했다. 연결되는 지점들이 생길 때마다 어려운 일들도 해결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결국 우리가 말했던 수업의 결과물은 커다란 모양이 되어있었다.(당시 순천에서는 교육부 주관 평생교육박람회가 진행되고 있었고 우리의 연극은 하나의 꼭지로 큰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 2021년 극단 ‘1949’의 초연이 마무리되었다. 어설픈 시작이었지만 참여한 모두의 가슴에 울림 하나씩 넣어주며 이야기가 이듬해로 넘어갔다. 2022년 순천 정담회와 지역사회에서는 순천 지역 학생들이 여순을 주제로 하는 교육과정 개발의 필요성을 고민하였고 민관학이 함께 참여하는 여순10·19교육과정을 만들게 되었다. 

송산초는 개발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달라진 가을을 맞이했다. 일단 각기 달랐던 프로젝트 학습의 주제가 ‘여순’으로 통일되었고 표현활동의 폭이 연극과 그림책 만들기로 다양해졌다. 초연 공연에 참여했던 5학년은 선배가 되어 작년의 경험과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점점 체계를 갖춰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첫해의 고민이 지속 되었다. 전문적 영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지역의 여러분들께 도움을 요청하였고 순천 지역에서 여순사건 공연을 맡아서 연출하시던 감독님을 연극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림책 수업 역시 지역활동가, 동네 책방 등과 연결되어 진행되었다. 2년차 수업 발표회 역시 크게 갖게 된다. 아이들은 한 번도 서보지 못한 넓은 무대에서 빼곡히 앉아있는 관객을 향해 자신들이 경험한 여순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배움의 농도 역시 진해졌다. 

“난 내년에 동네 아이들 해야지!”

올해는 별량지역청소년들의 예술제라는 더 큰 무대에 한 꼭지로 참여했다. 연극과 동시에 노래를 가미해 노래극 형태의 새로운 도전도 진행되었다. 올해 역시 작년의 경험을 6학년들이 공유하고 전수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 연극은 올해로 3회라는 역사를 지니게 되었으며 학생들 사이에는 1대, 2대, 3대 주인공이라는 포지션도 생기게 되었다. 동생들은 5,6학년이 되면 맡고 싶은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대화의 주제로 삼았다. 그렇게 여순이야기는 송산초 학생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원작 소설은 1949년에 일어난 낙안면 신전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비극의 역사는 아이들의 삶과 괴리가 있다. 2023년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버거운 내용이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했듯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고 공감하고 함께 기억하는 첫걸음이자 멋드러진 연기를 보여줌을 넘어 평화와 회복을 위한 고민의 시작이기도 했다. 꽤나 많은 시간과 고민을 들여 연극공연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들도 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 과연 아이들에게서 배움은 일어나는 것인가?’ 충분히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하지만 여순 교육과정을 통해 지역의 아픈 역사를 알고 다른 이의 삶을 고민하는 경험을 해본 친구들은 다를 것이다.

적어도 3년을 해보니 대충 그려지는 듯하고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신뢰도 생긴다. 아픈 역사에 대한 맹목적인 기억이 아닌 주변의 삶에 공감하고 함께 관계 맺어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한 씨앗 정도는 튼튼히 심어지고 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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