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칼럼-삶 그리고 죽음

▲ 이정우
민들레하나한의원
원장
여름에 비해 겨울 하늘은 게으릅니다. 게으름을 배우고자 일찍 일어난 6명이 새벽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순천만 용산을 올랐습니다. 갈대밭 사이로 걸으면서 보았던 그믐달은 별들이 지켜보니 든든한 모양입니다. 캄캄한 어둠은 쉬이 가시질 않고 쓸모없어진 눈은 두려움에 덥힙니다. 한 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 춥지 않은 기온과는 별개로 차가운 바람이 작은 산속이라도 칼날처럼 매섭습니다. 하지만 한풍도 결이 있어 산길을 걷는 내내 불어 닥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몰아치는 바람이라도 조금 지나면 잠잠해집니다.

어둠을 헤치고 한 걸음씩 올라갑니다. 용산전망대에서 본 순천은 벌건 아궁이 같습니다. 그 속에 숨겨진 수많은 욕망이 따뜻한 열정으로 나아가기를 덜 찬 달님과 함께 빌어봅니다. 욕망이 열정으로 전화하기 위해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소통해야만 가능합니다. 개개인에게 숨겨진 채 차곡차곡 쌓이기만 하는 욕망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흐르지 않고 고이고 쌓인 욕망을 드러내고 햇빛을 보게 하며 좋은 길로 흐르게 하는 것이 이웃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통하는 이웃이 함께 하면 욕망은 열정으로 승화할 것입니다.

 
우리 몸에도 남과 구별 짓고 요새처럼 밖을 차단하는 피부가 있습니다. 피부는 총면적인 1.5~2㎡에 이르는 인체 내 가장 큰 기관입니다. 끊임없이 탈락하고 재생하여 4주마다 한 번씩 새로운 피부로 바뀝니다. 튼튼한 가죽 요새를 쉬지 않고 수리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과정이 평생 계속됩니다.

그런데 외부 물체와 소통하는 위장관은 입에서 항문까지의 길이가 5m 내외이지만 장점막의 융모를 펼쳐보면 면적이 피부의 10배나 되는 200㎡에 이릅니다. 이로써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밖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차단하는 것보다 나 이외의 다른 만물과 소통하는 것이 생명의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살기 위해서는 소통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을 가진 것들의 운명이자 소명입니다.

겨울바람은 동천의 물 위에서 출렁이며 놀고, 겨울 철새들은 날개를 털며 목청껏 아침을 준비하고, 마른 갈대들은 여명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떱니다. 7시 20분에도 겨울 해는 오르지 않았습니다. 게으른 하늘이 순리라 하지만 바람과 갈대와 철새 그리고 초승달처럼 우리들도 자고 있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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