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인생라면에 대해 쓴 글이 광장신문에 실린 첫 글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단둘이 겨울산에 가서 눈을 녹여 끓여 먹은 라면이 내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라면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갑을 놓고 간 것을 모르고 산 반대편으로 내려가, 집까지 힘들게 걸어왔기에 더 기억에 남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가장 오랜 시간 함께 한 추억이기도 했고요. 그 글을 쓴 당시에 아버지는 암 투병 중이었습니다.

 

눈 내린 지리산 법계사 하산 중인 아버지
눈 내린 지리산 법계사 하산 중인 아버지

 

작년 3월이었다. 어머니께서 더 늦기 전에 지리산 법계사를 꼭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무릎이 좀 덜 아플 때 가야 한다고 아버지랑 내려오셨다. 3월 말이었다. 새벽에 출발했다. 전날 비가 왔는데, 3월 말이어서 별 생각 없이 출발했다. 중산리 주차장에 차를 놓고, 첫 셔틀버스에서 내려 등산을 시작하자마자 잘못을 깨달았다. 눈 덮인 천왕봉을 꼭 오르고 싶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지리산의 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아이젠도 준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많이 약해지셔서 무척 어려워하셨다. 아버지를 부축하면서 조심조심 올라갔다. 다행히 어머니는 잘 오르셨다. 한 시간이면 오를 거리를 두 시간도 넘게 걸려 오른 것 같다. 다행히 로타리 대피소에서 아이젠을 팔았다. 법계사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아름다웠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다. 예전에 모든 것이 열악했던 시절 불공드리러 서울에서 내려오셨던 고생담을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짧게 불공드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하산을 시작했다. 로타리 대피소에서 밥을 먹었는데, 하산길에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내가 싸준 김밥을 먹었던 것 같다. 하산길은 더 수월했지만, 아버지는 몇 번이나 주저앉으셨다.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하셨다. 어릴 적 나와 둘이 산에 가서 라면을 먹고, 올 때 돈이 없어서 서울대 입구에서 독산동까지 걸어왔던 것 기억하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기억하지.”하며 웃으셨다. 난 갑자기 목이 메어 말없이 걸었다.

부모님은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에서 사셨는데,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솔직히 전화도 자주 못 드렸다. 가끔 통화하면 괜찮다고만 하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통 입맛이 없어서 못 먹는다고 하셨다. 한약을 보내드렸지만, 좀 괜찮다가 또 안 좋아지곤 하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심해지셨다. 기운이 없어서 잘 움직이지 못 하셨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전화하셨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야 될 것 같다고 하셨다. 혼자 간병하기 너무 힘들다고. 토요일에 일 마치자마자 올라갔다. 아버지를 뵙자마자 눈물이 났다. 너무 죄송했다. 말씀도 잘 못 하시고 누워만 계셨다. 눈빛으로만 우리에게 인사하셨다. 갑자기 그렇게 안 좋아지실 줄 몰랐다. 스스로를 원망했다. 어머니와 함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몸을 닦아드렸다.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이해가 됐다. 일요일에 집 근처 요양원에 가서 계약을 했다. 

월요일에 코로나 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오면 그제서야 입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요양원을 나왔다. 아버지께서 여기 계신 모습을 뒤로 하고 나올 때를 상상하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에 내려와야 했다. 다음 주에 올라올 땐 아버지는 요양원에 계시겠구나 생각하며. 가족들을 차에 태우고 출발하려는데, 휴대폰을 방에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배웅 나와계셔서 혼자 아버지께 인사드릴 수 있었다. 혼자라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내 기억으론 아버지께 처음으로 해보는 말이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 힘겹게 팔을 뻗으시고 눈을 크게 뜨시면서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날 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눈물을 삼키며 운전해서 다시 올라왔다. 운전하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감사하기도 했고, 죄송하기도 했다. 요양원에 누워계신 모습을 보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했고, 자주 찾아뵙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지 않은 것이 죄송했다. 

지난 1년 내내 그랬다. 정답 없는 질문에 괴로웠다. 

그때 응급실에 모시고 갔어야 했나? 더 일찍 병원에 입원시켜드렸어야 했나? 아버지는 무슨 마음이셨을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으셨을까? ‘멀리 사는 아들과 손주, 며느리를 봤으니 이제 됐다.’라고 생각하셨을까? 낯선 병원이나 요양원보다는 익숙한 안방 침대에서 눈감고 싶으셨을까? 이제 곧 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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