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김인호
사진제공 김인호

 

1948.10.19  (박두규시인)  

 

1945년 해방을 기뻐하지 말자

그것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일제에서 벗어나 단군의 조선, 삼일의 시절을 꿈꾸며 

내 땅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했건만

하나의 하늘을 함께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의 땅을 함께 걷지 못하니

미제의 반쪽 해방을 어찌 기쁨이라 할 수 있으랴

우리에게 아직 해방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진정한 해방을 위해 피를 흘렸던

1948년 4월과 10월을 마냥 슬퍼하지는 말자 

그것은 다시 일통의 세상을 보기 위한 레퀴엠이었다 

그 숱한 죽음들의 오른쪽과 왼쪽이 만나고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들을 서로 품어 줄 수 있어야

그것이 바로 일통의 세상이니

너와 내가 꿈꾸었던 하나의 조국

그것을 향했던 1948.10.19 여수와 순천

그 역사의 항쟁 속에 학살된 숱한 죽음들을

어찌 슬프고 헛되다고만 할 수 있으랴

해방이 되었으나 해방된 나라가 아니었다

일제보다 더 모진 순사 나리들의 세상이었고

미제의 권력 아래 양곡의 수탈은 여전히 심했다

더구나 하나의 조국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고

38선으로 나라가 나뉜다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막기 위해 제주 4.3이 일어났고 

그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어 여수 14연대 군인들은

동족상잔 결사반대, 미군 즉시 철퇴를 외치며 봉기하였다

1948년 10월 19일 봉기 이후 9일 동안

이념도 사상도 없는 양민들은 아수라 지옥에 빠졌다

14연대 군인들의 주력 봉기군이 지리산으로 빠져나간 뒤 

전국에서 내려온 이승만 정부의 토벌대가 꾸려지면서

여수와 순천, 주변의 벌교 보성 고흥 구례 광양 등지에서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이 시작되었다

좌우를 구별하는 손가락은 총이 되어 집단학살이 시작되었다

만성리 구랑실 애기섬 신전마을 간문천 형제묘 백월마을 항쟁탑 백비......

소명도 없이 죽어간 죄 없는 원혼들이 떠도는 곳

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자 할아버지 때문에 죽고

지까다비 신발 하나 사다주었다고 죽고

어머니와 아버지 서로 뺨치기를 시키고 그러다 죽고

나는 죄가 없응께 괜찮다며 나갔다가 죽고

14살 반란군 연락병으로 총상을 입은 어린아이

마을 사람들이 옷도 빨아주고 홍시도 주고 밥 먹여주었는데 

그 아이의 손가락 총에 마을 사람 22명이 죽고

마을 전체를 불 지르는데 소는 끌어내고 사람만 죽고

엄마 등에 업힌 채 3살 난 아기도 죽고

반란군이 탄 기차를 운행했던 철도기관사도 죽고

입산자가 있는 마을은 불타고 40여명이 트럭에 실려가 죽고

아침마다 사람 하나 죽이고 해장 했다는 지서장과

11구를 들쳐 내고 아들의 시신을 수습했다는 노인네 

그렇게 죽고 죽고 죽고 또 죽고 또 또 죽고 무더기로 죽고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자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빨갱이가 되었고

그 어린 자식 또한 아무런 이유 없이 빨갱이 새끼가 되어

연좌제의 덫에 걸린 죄인으로 억울하게 한 평생을 늙은 사람들

좌절과 절망의 세월 속에 한 평생 숨어 살다가 

흰머리에 고부라진 허리가 되어서야 비로소 

맘 놓고 울 수 있는 세월을 맞아 슬픔을 슬픔으로 통곡할 수 있었다

여순항쟁에 희생된 혼령들이시여

맑고 고운 하늘, 이 눈부신 날에 그대들의 넋을 불러봅니다

그때의 당신보다 많은 나이의 노인네가 되어 그대들을 불러봅니다

젊고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 내 어머니시여

당신을 잃고 의지할 곳도 없이 하루 세끼 밥을 찾아 

눈물로 세상을 떠돌던 서러운 세월을 기억합니다 

억울함과 분노의 오랜 세월을 헤매온 어둠 속 넋들이여

이제는 맺힌 원한 깨끗이 씻어내소서

희생된 여순의 넋이여, 항쟁의 영령들이시여

그대들의 서러운 세월 이제 모두 잊으소서

진실은 진실을 믿는 자에게 있으니 우리에게 있으며

화해는 화해를 하려는 자로부터 시작하니 그것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용서받을 자보다 용서하는 자의 마음이 평화로우니

그 용서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젊고 아름다웠던 내 아버지, 내 어머니시여

이제 모두 잊고 편히 쉬소서

우리들 몸에는 아직도 오동도의 동백처럼 

붉은 꽃잎 뜨거운 꽃들이 해마다 피어납니다 

당신을 향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1948년 10월 19일 이후 이 땅에 고스란히 갇혀있는

도심과 골짜기 곳곳의 총성과 비명소리 

그 동백꽃 붉은 세월은 우리의 가슴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고운 꽃모가지 뚝뚝 떨어지던 서러운 세월 

억울한 넋들과 빛나는 항쟁의 혼령들이시여

이제 우리가 그대들의 한 맺힌 오라와 차꼬를 풀어드리겠습니다 

칠십여 년 닫혀있던 10.19의 빗장을 열어

맑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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