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승관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장
임승관 민족문제연구소 전남동부지부장

“학생운동으로 재판을 받던 25년 전 겨울. 국선 변호사는 “피고는 전라도 순천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사회에 불만을 많이 가지고 자랄 수밖에 없었습니다.”며 변론을 시작했다. 나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변호사에게 항변했고, 이 촌극을 비웃으며 바라보던 재판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간 정치권의 다툼으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이 만연하다 생각했던 내게, ‘전라도는 사회문제 아양성소’라는 사회 인식이 일부에 형성되어 있음을 알게 해준 사건이었다. 전라도에 대한 이런 편견은 누가 봐도 사실이 아니었기에 곧 사라질 거로 생각했다.

올해 넷플릭스에서 흥행한 영화 ‘길복순’의 장면 중 봉투에 표기된 여러 지역의 위치가 ‘지역명-국가명’으로 되어있는데 유독 순천은 ‘순천-전라도’로 표기되어 지역 비하 논란을 일으켰다. 일부 극우 사이트에서 전라도민을 ‘전라디언’이라 부르며 대한민국이 아닌 ‘그들만의 별도 국가’라 비하하는데, 그 표현을 따랐다는 것이다. 요즘은 덜하지만, 많은 드라마‧영화에서 저열한 깡패나 비루한 여성으로 전라도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였다. 파행을 겪은 새만금 잼버리에 대해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선 전라북도가 잼버리 준비보다 SOC 예산 확충에만 몰두해 사건이 발생했다며 전라도 책임론을 내세워 논란이 됐다. 가짜 뉴스까지 더해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전라도 혐오 표현이 넘쳐났고 잼버리 10개월 전 태풍‧폭염 대책을 다 세워놨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김현숙 여가부 장관, 불과 3개월 전 정부지원위원회가 꼼꼼히 챙겼다던 한덕수 국무총리 등 정부에 대한 비판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몇 해 전 트로트 가수 홍자는 ‘전라도 사람들 머리에 뿔 달린 줄 알았다’는 농담성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마산으로 시집가 속칭 함바집(일본어 はんば에서 유래)을 운영하는 칠순이 된 내 이모는 지금도 “전라도는 집마다 김대중 사진이 달려있다며?”라는 얘기를 듣는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역 비하가 정치‧사회‧문화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거짓 뉴스와 혐오가 더해져 표현의 수준이 섬찟해 글로 담지도 못한다. 전라디안, 홍어, 빨갱이, 좌빨 등은 외려 점잖은 표현에 속한다. 특히 망자나 여성에 대한 가학적, 적대적, 변태적, 성적 표현은 눈을 의심케한다.

지역 비하는 초라한 사고이자 비도덕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정도가 심해져 모욕적이고 확산이 빨라 저속한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지역 혐오 표현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전라도’에 대해 편견을 형성하며 성장하고 있다. 

교육과 사회적 인식 개선이 중요하지만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에 대해 처벌할 수 있게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었지만 선거운동기간으로 한정되어 있다. 경미한 범죄를 방치하면 큰 범죄로 이어진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교훈 삼아 관용에서 벗어나 거짓에 기반한 지역 혐오 표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법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언론학회 연구논문에 따르면 네이버 지역비하 댓글 중 66.4%가 전라도비하라 한다. 우리가 묵과하면 우리는 언제고 문제아양성소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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