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진실규명에는 힘이 필요하다. 명예회복도 마찬가지다. 힘없는 개인들에게는 어불성설이다. 온 가족이 찢기고 피주검이 되어도 호소할 곳조차 없다. 여수·순천 10·19 사건의 유족들이 그랬다. 여순사건 당시 순천농업학교 교사였던 김관수씨는 “여순사건이 6.25보다 더 무서웠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 나라에서 같은 민족끼리 일어난 사건인데도 정부차원에서 73년의 기나긴 시간동안 사실조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것도 여순사건 희생자 접수 사례가 7천1백여건에 이른데도 말이다.(2023년9월말 기준 여순10·19사건신고 건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은 정권의 성향에 따라 많이 좌지우지된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여순10·19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것 봐도 알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국민을 위해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도 집권 유지라는 목표치에 부합할 때에만 적극적인 탄력이 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이다.

문재인 정부때 여수순천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시행됐지만 불완전한 출발이었다. 제10조 제2항의 신고기한이 걸림돌이었다. 2022년 1월 21일부터 2023년 1월 20일까지의 기한으론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신고된 건수만 해도 7천1백건이다. 게다가 인력도 달린다.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지난 3월에 신고기한이 오는 12월 31일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연장된 기한으로도 조사가 제대로 마쳐지기는 어려워보인다. 9월말 기준 실무위원회의 심사가 끝난 건 수는 1천1백54건이고 중앙의 여순사건심의위원회의 심의, 결정된 사례는 3백46건에 불과하다. 대기중인 6천여건을 마무리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실정이다. 진상규명 조사기한 연장이라는 특별법 개정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힘이다. 지역민의 강렬한 의지의 표현이 중요하다. 아무리 공감대와 여론이 비등하더라도 법을 개정하기에는 벅차다. 정권의 편향에도 견디기 어렵다. 지역의 힘은 이 모든 풍파를 헤쳐나갈 원동력이다. 이 힘은 연대에서 나온다. 연대는 여순사건에 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주철희박사는 지역민의 무관심에 한탄했다. 언론마저 죽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제주의 지역신문들은  4·3사건의 보도에 앞장섰다. 제주도민들은 4·3사건에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정치인들을 철저히 배제했다. 여순사건의 희생자와 유족의 통한은 결코 그들만의 짐이 아니다. 함께 짊어지고 풀어야 할 우리의 과제임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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