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덕 여순사건지원단장 인터뷰

김용덕 여순사건지원단장에게 여순10·19 사건은 남다르다. 지난 9월 인사에서 여순사건지원단장으로 임명됐을 때 그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어렸을 때 가끔씩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 때는 잘 몰랐다”던 그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비로소 그 전말을 인지하게 됐다. 외조부는 누군가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뒤 마을 대밭에 내던져졌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외가 식구들에 의해 겨우 장례를 치르게 됐다. 바로 여순10·19 사건때 겪은 어머니의 한이었다.

그 아픔은 김 단장에게까지 씌워졌다. 고흥출신인 그는 순천고등학교(33회)에 다니면서 육군사관학교를 꿈꿨다고 한다. “우리 때는 연좌제가 있어서 입학이 안될 것으로 판단하고 진로를 바꿨다”며 가볍게 미소짓는 그의 얼굴에 어머니 얼굴이 겹쳐졌다. 자식 앞 길에 방해될까봐 관련된 문서, 사진들을 모두 뒤져 불태운 아버지 심정은 지금도 헤아리기 어렵다고도 했다.

“75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탓에 자료가 많이 부족해서 희생자에 대한 근거를 찾는게 가장 어렵다”는 김 단장은 “현재 조사인력의 충원계획도 없어 기한 내 심사를 마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17일 현재 신고접수건 수가 7천1백건이고 실무위원회의 심사건 수는 1천5백48건에 불과해 진상규명조사기한 연장이라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요즘 역사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책상 한 켠에는 여순사건 관련 책자가 쌓여있다. 지역의 정서 파악에도 열심이다. 동문회에 참석하는 것부터 이 지역 유족회 관련자들의 만남까지 그는 주저하지 않는다. 여순사건 희생자 심사에 대한 진지함이 느껴진다.

“유족들의 슬픔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는 없겠지만 그 날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회복, 그에 합당한 보상등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의 말이 오랫동안 귓가에 맴돈다.

김용덕여순사건지원단장.
김용덕여순사건지원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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