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소천했다. 향년 96세로 유족으로 는 부인과 정동원, 정동열, 정동주, 정동 기, 정동오, 정미량 자녀가 있다. 정옹은 순천언론협동조합 정미량이사의 부친이 다. - 편집자주

아랫줄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이 정찬일옹이다. 정옹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성정을 닮아 모두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정찬일옹은 남달랐다. 부인을 향한 애틋함은 감동적이기까지하다. 죽기 전까지 한 침대에 한 이불 덮고 자는 것을 고집했다. 생전에 자신은 한 번도 안 간 여행이지만 부인만큼은 세상 유람 다 시켜주었다. 운동삼아 마을회관에 놀러갔다 오라며 평소에도 살뜰히 부인을 보살폈다. 그러는 그가 부인을 혼자 남겨두고 다시는 못 올 그 먼 길을 떠나려 할 때 마음이 어떠했을까 헤아리기 어렵다. 유언으로나마 자식들에게 어머니를 잘 챙겨 달라는 마음 또한 편치 않았을 것 같 다. 정옹은 일생을 남에게 부담주는 일을 싫어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건장한 아들 다섯에게 농사일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쳤다. 욕심낸다고 잘 사는 것 아니니 과욕부리지 말고 편하게 살라고도 알려줬다. 남에 게 피해도 절대 주지말라 했다. 이런 신념은 그로 하여금 추수가 끝날 때마다 동네사람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이게 했다. 이 모두가 96세로 생을 마감한 정옹의 시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상이다. 독서를 좋아하고 남을 배려하는 천성이 정옹을 가부장적인 세태에서도 가장 가정적인 아버지로의 삶을 영위하게 만들었다. 장지로 떠나는 날 3일 내내 세차게 내렸던 장맛비도 멈추었고 동네 주민들 대부분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나온 장면이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잘 대변해준다. 아버지 정찬일옹은 말 그대로 자녀들의 자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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