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딱 벌어졌다. 작은 텃밭에 소일거리 정도려니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무색할 정도로 천 평이 넘는 수세미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고 지지대를 세운 뒤, 두 번째 모종을 심고 난 직후의 수세미 밭 전경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고 지지대를 세운 뒤, 두 번째 모종을 심고 난 직후의 수세미 밭 전경

한 달 전에 힘들게 심은 800여 개의 수세미 모종이 거의 다 죽어버려서 모두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농사 초보들의 실패를 만회할 양으로, 다시 심은 어린싹들은 다행히 뿌리를 내리고 넝쿨을 감아올리는 중이었다. 오늘의 농사꾼으로 자원한 동부지역사회연구소(이하 동사연) 회원들은 6월의 뙤약 볕에서 지지대에 끈을 매달고 넝쿨을 연결하느라 허리 필 틈이 없었다.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고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이 한창인 모습
자라난 잡초를 제거하고 지지대를 세우는 작업이 한창인 모습

낙안에서도 외진 산중으로, 이 밭에 눈독을 들인 것은 지난해 11월부터다. 동사연에 장채열 이사장이 작년부터 땅 주인인 후배 집에 드나들며 가을걷이와 잡다한 농사일을 도와주면서 밭을 무상으로 임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 4월에 수세미 모종을 시작으로 지지대 설치하는 방법을 두고도 갑을을박에 시행착오는 기본으로 그야말로 아마추어 농사가 한창이다.

장 이사장은 “수세미를 심는 일은 생태를 심는 일이다. 수세미 농사는 생태와 관계없이 살았던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심고 가꾸며 생태 활동에 자연스럽게 함께하는 과정이다.

하루 농사 일꾼을 자처한 동부지역사회연구소 회원들

올해는 연구소 회원 간의 다사다난한 경험을 얻는 시간일 것이다. 자신감을 얻어서 내년에는 자치협의회같은 마을 조직에 권해서 본격적으로 수세미 심기를 해볼 작정이다.”라며 순천의 여름 거리가 수세미꽃으로 채워지는 생태 공간을 꿈꾸고 있다.

성과나 보여주는 결과에 성마른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고, 수세미가 익는 가을을 기다려 보자. 수확이 끝나면 주방에 천연 수세미를 들여놓고, 내년에는 문화의 거리나 공마당 골목에도 수세미를 심자. 그리고 수세미꽃이 환하게 피어있는 여름을 기대해보자.

사족으로, 수세미의 여린 넝쿨 줄기와 말랑한 흙이 주는 부드러운 감촉만으로도 하루 수고에 품삯으로 충분했는지, 고생스럽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작업내내 연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위로가 필요한 분들은 서슴지 말고 하루 농부에 지원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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