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하하, 풀을 재배하고, 풀과 놀고 있습니다

풀과 전쟁을 하고 계시는군요. (약간 한숨을 섞어) 풀은 못 해봅니다! 예초기 조심하세요.”

 

풀과의 전쟁이라니! 나는 속으로 미소 짓는다. 그 말은 풀과의 전쟁 단계를 지나 휴전협상을 마치고 평화공존의 단계에 들어와 있는 나에게 할 멘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전쟁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분은 화해 상생의 경지에 이른 나보다 풀에 관한 한 하수임이 틀림없다.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의 수련이 필요했다.

10년 공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나는 풀을 이기려 드는 일은 아내를 이기려는 것보다 더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다라는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발본색원이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걸 안다.

우주에서 제일 부지런한 우리 윗집 박 이장님은 풀과의 전쟁을 하다가 마침내 제초제라는 핵폭탄을 투하하고 계신다. 그러나 나는 호미보다 날이 길고, 괭이보다 자루가 아주 짧은 소괭이또는 긴호미와 예초기를 갖고 풀과 논다. 서바이벌 게임을 하듯 나는 아침저녁으로 풀을 매고, 뽑고, 베며 논다. 풀을 이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뽑다가 베다가 남는 풀은 방치한다. 내가 풀에게 진 것이 아니므로 자존심이 상할 리 없다.

고백건대, 나는 한때 유어예(遊於藝), 예술에서 놀겠다는 건방진 꿈을 꾼 적이 있다. 지금은 유여초(遊與草), 풀과 더불어 놀고 있다. 그제는 꽃밭의 풀과 놀았고, 어제는 텃밭의 잡초와 즐겼다. 오늘은 잔디 이발을 해주면서 기뻤다. 내일은 허리까지 자란 나무 밑의 풀과 놀 것이다. 장마철은 풀들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어서 저 혼자 놀게 놔둔다. 짝 잃은 나는 거실에서 비멍을 때린다.

은퇴 후 귀향한 것은 잘한 일이다. 친구도 없고 가족들과도 소원해져 사는 게 외롭고 쓸쓸하다는 친구가 있는데, 나는 방문만 열면 언제나 수백만의 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반기니 어찌 심심할 수 있겠는가? 풀과 노는 일은 돈도 안 들고, 특별한 도구도 필요 없다. 7천 원 하는 하이브리드 호미 한 자루면 끝이다.

혹시 자연인을 꿈꾸는 분이 있다면 자신이 풀과 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란다. 풀을 이겨야겠다는 쓸데없는 호승심(好勝心)을 버리고 풀과 논다면 삶이 행복해질 것이다.

행복한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항상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부처님, 제 잔이 넘치나이다!” 하하하~~.

문수현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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