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유적지 답사 간담회에서 갈등 표출에도 불구

이들의 시각 차이는 용어에서 비롯됐다. 여순1019가 항쟁이 아니라 학살이라는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박종길 소장의 입장 표명이 도화선이 됐다. 박 소장은 항쟁이라고 명명하기엔 여순사건의 봉기군이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논리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학살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다는 얘기다. 구례 산동 꽃쟁이 민간인 학살이 예시로 나왔다. 박 소장은 이곳에서 1천여 명 이상이 파묻혔다고 말했다. 순천, 광양, 구례지역의 1019연구회원들은 항쟁이 맞다는 주장을 폈다. 결과와 과정이 어떻든 간에 맞서 싸웠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논쟁이 가열되자 급기야 항쟁이나 학살의 의미 부여가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냐는 질문에 박 소장은 그렇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아직까지는 제주 4.3이나 여순 1019가 사건으로 불린다.

유족들의 대다수가 배상과 보상에 관심이 많아 이 부분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는 박 소장의 발언에 갈등은 폭발됐다. 구례 1019연구회 소속의 한 회원은 지금껏 내가 만난 유족 중 배상이나 보상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이들 대부분은 진실규명으로 빨갱이 자식이란 손가락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고 반박했다. 순천의 한 연구회원은 박 소장에게 발언을 취소하라며 핏대를 올리기까지 했다. 더 이상 간담회는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그동안의 우려가 이번 여수 1019유적지 답사 간담회에서 일부 나타난 셈이다. 여순1019사건 관련 단체들은 많다. 여순1019범국민연대, 여수사회연구소, 순천·고흥·광양·구례·여수 유족회 및 1019연구회, 유족연합회 등등은 보이지 않는 갈등에 휩싸여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했었다. 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진실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란 대의에서 비교적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자신의 주장만 맞고 상대의 이견을 폄훼하는 의도가 더해져 반목의 상황까지 간 것 같다. 각 단체 리더의 개인적 성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리더 간의 친소는 곧 갈등을 유발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동부권 시민들은 이들의 화합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여순1019단체들은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들과 평생 이들의 유족이란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후손들을 위한다면 더욱 그렇다.

다행스러운 것은 간담회에서 각 단체가 진실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에 한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오는 10월에 다시 만나기로 합의한 것도 주목된다. 각 지역에서 학살자 암매장으로 의심되는 곳을 파헤친다거나 군사재판 기록지나 정부에서 보유 중인 관련 자료 요구, 희생자들에 대한 현실적인 보상, 배상문제 등을 심도있게 다루는 등 이들 단체가 힘을 모아 야할 일들은 넘치고 있다. 위령사업에도 의견을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여순1019의 수많은 의혹을 이번 기회에 그마저 놓친다면 두고두고 이 지역의 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강성정 편집국장
강성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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