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주로 특성화고 1학년 학생들을 만나 근로기준법에 관한 얘기 나누고 있습니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정해 놓은 법률임을 강조하며 늘 그 이상의 노동자 권리에 관한 얘길 하지만, 학생들은 최저기준을 최고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곤 합니다. 나아가 그 최저기준조차 무슨 자격이 있어야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40%를 훌쩍 넘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롯해 대다수 노동자가 최저시급에 준하는 임금을 받고 있고, 시급제 노동자 가운데 43만 명(17.6%)이 최저시급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특성화고 재학 청소년들이 최저시급을 최고의 시급으로 인식하고 그마저도 어떤 자격증이 있어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특성화고 재학 청소년들은 노동자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 그것도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를 위해 자격을 갖춰야 하는 이상한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닌 이상한 세상에서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 지게차부터 CAD까지 온갖 자격증 수집에 매달리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결혼은 선택, 자격증은 필수’라는 이런 어색한 표어가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순천의 한 공업고등학교 교실에 급훈 대신 큼직하게 게첨 된 것입니다. 자격증을 따면 결혼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언뜻 보면 라임도 잘 안 맞고 앞뒤 개연성도 약해 보입니다. ‘직업은 선택, 자격증은 필수’ 정도였다면 쉽게 수긍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노동 구조를 생각하면 정곡을 찌르는, 그야말로 쩌는 펀치라인입니다. 사실 성적-노동-결혼은 분리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성적에 따라 학생들을 줄 세우고 그 서열대로 위계적으로 노동에 배치하고 결혼제도를 통해 그 불평등성을 공고하게 다지고 재생산해 왔으니까요. 이런 급훈들이 아직도 버젓이 걸려있는 학교도 있는걸요.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표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자격증은 어떻게서든 꼭 딸 거지만 결혼은 못 할 것 같다고 말이지요. 최저임금 200만 원으로 한 달 살아보기를 가상 체험한 후에 나온 얘기입니다. 순천 원도심 원룸에서 살면서 아침 식사는 거르고 점심은 식당에서 저녁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고 버스로 출퇴근하면서 냉난방은 최소로 조정하고 생필품 외 소비를 최소화하고 영화 1편, 친목회 1회를 갖고 나면 약 10만 원이 남습니다. 남은 돈으로 학생들 대부분 보험에 가입하겠다고 합니다. 혹 아프기라도 하면 아무 대책이 없다면서요.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할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 몰라도 독립해서는 못 살겠다”, “돈 벌면서 기사 자격증 따려고 했는데 학원 갈 돈도 없다”, “못 살겠다, 돈 많이 주는 데로 이민 가겠다”, “차라리 자연인이 낫다”, “취업해서도 알바 뛰어야겠네” 최저임금으로 1달을 살아본 학생들의 소감입니다.

그래서 표어를 ‘결혼은 포기, 연애는 선택, 자격증은 필수’로 바꾸어야 한다고 합니다. 자격증이 필수인 이유는, 정말 필수인지 모르겠지만 그조차 없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노동자는 1년에 평균 1,915시간 일하며 살아갑니다. 이는 OECD 평균보다 199시간이나 많고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566시간이나 차이가 납니다. 그 덕분일까요? 우리의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로 잘 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국가는 잘 사는데 일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상한 대한민국에서 청소년들은 결혼을 포기할 모양입니다. 청년들은 이미 포기한 것 같기도 해요. 결혼 청첩장을 받아본 지 꽤 되었네요.

김신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김신 청소년노동인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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