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산속에 있는 토굴 같은 집이 참 좋다. 갖가지 푸성귀도 풍성하고, 이런저런 꽃이 피어 있으며 시원하기조차 하다. 낡은 대나무 의자에 앉아 앞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멍해지며, 그야말로 멍 때리는 기분에 젖어 든다. 요즘처럼 폭우가 잦은 날이면 잠시 비가 갠 사이로 산 아래에서 올라오는 운무가 앞산을 온통 덮는 풍경을 보며 아, 구름 속에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한다. 호사스러운 기분에 빠져들며 이런 황홀경 속에 살아도 되나, 싶을 만큼 흥겹기도 하다.

산속에 돌집을 지은 지가 꽤 된다. 가족들과 함께 지내기도 하지만 가족의 지인들이 오가곤 한다. 나 혼자 있을 적에는 외롭기도 하여 친구 불러 술을 마시고 이래저래 놀며 지낸다. 그러던 담소 가운데 고교 후배가 찾아와 한 말이 오늘은 퍼뜩 생각났다.

퇴직 후에 지낼 만한 곳을 찾다 찾다 복덕방 사람이 소개해 준 땅을 샀다. 산에 가까운 집터를 알아봐 달라는 게 요구였다. 그런데 산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아예 산속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봤지만 이만한 터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듯해 덥석 계약했다. 공부상으로는 논이나 오랫동안 묵혀 숲으로 변해 있었다. 마을에서 2㎞ 남짓 올라가는 산 중턱으로 화전을 일구던 터라 여길 만큼 깊은 곳이다. 지금이야 이웃이 생기고 전기가 들어오며 광케이블이 깔려 인터넷도 되지만 애당초 험지였다. 차 한 대 겨우 다닐 정도의 임도가 나 있으되, 서로 비켜 가기 힘들고 경사도 급한 지형이다. 2009년, 집을 지으려는 인허가 과정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불안해하더니, 급기야 잠자리를 털고는 새벽바람 맞으며 부랴부랴 내려가던 친구도 있었다.

터를 장만하고 얼마 뒤 겪었던 일화다. 연초에 신점을 보곤 한다는 동료가 집터를 마련했다고 하니, 특히 양택을 잘한다는 점쟁이를 소개하며 보러 가자고 하도 채근하는 바람에 물리치지 못하고 길을 나섰다. 차로 올라갈 수 없을 만치 눈이 쌓인 산길을 휘적휘적 걸어 도착해, 점쟁이가 휘익 둘러보고 처음 한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하이고, 여그다 집 짓고 살믄 삼 년 안에 가것소.’ 하더니 덧붙이길, ‘오메, 재물도 싹 쓸어 가불 것고만.’ 하는 험담이었다. 좋은 말 들을 수 없으리란 예감에 딴은 가고 싶지 않았으나, 결국 고약한 소리만 듣고 잠시 속을 다스리던 기억에 쓴웃음을 짓는다. 그 후로도 죄를 많이 지었냐? 머리 깎어라, 등등의 꾸짖음(?)은 귓등으로 흘렸다.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집터를 계약하고, 집 짓는 공사 역시 반대를 무릅쓰고 저지르고 말았으니…하물며.

사실, 나는 입때껏 선택 장애를 앓으며 살고 있다. 이랬어야 하는데, 왜 그랬을까? 저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그건 잘못된 결정이었어. 하필, 이렇게 되다니…하면서 머리를 싸매고 후회하곤 한다. 사는 게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무얼 하고는, 무슨 말을 하고는 아이고 왜 그랬을까? 하고 곧바로 혹은 뒤늦게 속을 끓이며 애태운다.

비 오락가락하는 산속에 홀로 앉아 구름 솟아오르는 앞산 풍광에 빠져, 몇 년 전 후배가 한 말이 오늘, 새삼 또렷하게 떠오른다.

“선배님은 ‘선견지명’이 있어요. 어떻게 이런 산속에 집 지을 생각을 했어요.”

혹여 부러움이었겠거니 여기며 후훗, 살며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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