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 문수현
순천고 교사
저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인간적이다, 사람답다는 말은 대체로 인간이 이기적 본성을 지니고 있지만 어떤 사람이 그것을 넘어선 모습을 보일 때 쓰는 말 같습니다. 자기 욕심을 덜 챙기고, 남을 이해하고 인정을 베풀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용서할 때 인간적이라고 합니다. 근엄하고 엄격한 지체 높은 사람이 소탈하고 서민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쓰지요.

우리가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주 많지만, 그중에서 저는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빈부 상하 귀천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걸 가지고 사람을 차별하는 건 사람답지 않은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약자를 괴롭히고 공격하는 짓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왕따’나 ‘집단 괴롭힘’이 정말로 끔찍한 이유는 그것이 힘없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행동이 좀 남다르고 말이 좀 어눌하다고 갖은 악행과 폭행으로 젊은 목숨을 앗은 ‘윤일병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연로한 부모에게,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패륜을 저지르는 일도, 장애를 가진 사람과 피부색이 조금 다른 사람들을 놀리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몸서리가 쳐지는 일입니다.

‘일베’는 더 끔찍합니다. 소위 ‘일베충’들도 사회경제적 약자입니다. 그런 그들이 왜 같은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 여자, 호남 등을 비하하고 조롱하는지 저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데, 약자가 같은 약자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며칠 전 무크지 ‘모멘툼’ 창간호가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이 기괴한 일이 왜 발생하는지 학술적으로 분석했다고 하는데, 분석 이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돈을 더 많이 갖기 위한 무한경쟁체제에서 주변으로 밀려난 약자들이 같은 약자를 공격하는 걸 보면서 이제 우리사회가 갈 데까지 간 게 아닌가 하는 암담한 느낌이 듭니다. 약자들끼리 이전투구를 하도록 방조하고 부추기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조금이나마 눈치 채면 좋겠습니다. 가진 것 없는 우리끼리 서로 돕고 응원하며 힘과 용기를 주어도 모자랄 판입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한 달 이상 곡기를 끊고 피울음을 토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말도 안 되는 ‘폭식투쟁’이라는 걸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같이 울어주지는 못할망정, 생각이 좀 다르다고 약을 올리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들을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강한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60~70년대,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어도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는 비렁뱅이에게 먹다 남은 고구마라도 주었습니다. 그것도 그릇에 담아 상에 올려 주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는 빈부와 별 상관이 없습니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동냥은커녕 쪽박마저 깰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죄로 갑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밥벌이하기도 고단하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대소사를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으려 합니다. 무의식적으로라도, 기댈 데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조롱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기를 저에게 빕니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귀한 목숨을 가진 사람이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