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섭
순천공고 역사교사
“순천에서 인물자랑 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데, 정작 순천의 인물로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순천시청 누리집에서 순천의 인물로 꼽고 있는 57명의 인물 중 교과서에 수록될 정도의 지명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중앙시장 입구에 3․1 만세 운동을 시도했던 박항래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금당 공원에는 백강 조경한 선생의 추모 조형물이 있다. 죽도봉에는 김종익 동상과 강계중의 동상이 크게 세워져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인물 자랑’ 운운하기는 빈약하다.

목포에 갔을 때 여기저기에 목포 출신 예술가의 조형물이 세워진 것을 보고, 자기 고장 출신 인물을 소중히 여기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교과서에 나올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도 지역민 스스로 인물을 소중히 대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교육적으로도 값진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굴레에 얽혀 빛을 보지 못한 인물을 지역민의 힘으로 복권시켜 낸 사례도 있다. 통영의 윤이상, 광주의 정율성이 바로 그렇다. 윤이상은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친북 인사, 정율성은 중국의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고 6.25 때 중국군으로 참전한 반국가 인사라는 일부의 비난에도 학술적, 예술적 접근으로 극복하고 있다.

순천에서 우선 복권시켜야 할 인물은 1920~30년 대 순천의 항일운동을 주도한 이영민, 김기수, 박병두, 이창수 등이 아닐까? 네 분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박병두 뿐인데, 해방 되기 이전에 돌아가신 덕이다.

이영민의 경우 순천의 경승을 판소리조 단가로 만든 분으로 연향3지구 순천가 공원 조성을 통해서, 국립광주박물관의 ‘남도문화전-순천’을 통해서 그를 인정하고 있다. 판소리의 후원자로, 벽소체라는 개성 있는 서체를 만들어낸 서예가로 업적을 낼 정도로 민족문화에 심취했던 그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던 것은 항일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기수는 월북했다는 것이 문제 될 수 있겠다. 하지만 해방 공간에서 친일파 득세에 절망한 일부의 민족주의자들이 북을 택했으나, 북의 체제를 비판하다가 숙청된 경우가 많이 있다. 김기수의 월북 이후 행적이 나타나지 않은 것도 이런 배경이 아닐까 싶다.

노무현 정부 때 독립유공자로 표창 받은 박병두의 유적도 잘 보존되고 있지는 않은 실정이다. 순천 자랑 100선 가운데 66번인 서면 추동마을의 관경정은 ‘소작쟁의 발상지’로 올라있지만 안내판 하나도 없고, 정자는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

‘절초 동맹’으로까지 발전된 순천의 농민항쟁은 일제 강점기 대표적인 농민 저항이었지만, 순천에는 조형물 하나도 없다. 암태도가 있는 신안 궁삼면, 농민항쟁이 있었던 나주처럼 순천에도 관련 조형물이 들어서고, 항쟁을 주도한 인물이 재조명되었으면 좋겠다.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난 분도 마찬가지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올해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 헌액 대상자로 선정한 사람이 정문기(1898~1995) 박사였는데, 그의 고향 순천에선 언급조차 안되고 넘어가고 있다.

서울시와 한글학회는 일제강점기에 목숨을 걸고 우리말·우리글을 지켜낸 조선어학회 선열들을 기리고자 올해 8월에 세종로에 조선어학회 한말글 수호 기념탑을 세우고, 33인의 이름을 새겼다. 그 중 한명이 순천 사람 김양수이다. 얼마 전 지역에서는 남교오거리의 김양수 옛집을 허물어버렸는데, 그의 이름은 거론도 되지 않는다.

물과 산과 들이 조화를 이뤄 아름다운 고을 순천. 여기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했던 인물을 발굴해 현창함으로써 순천이 인물의 호수요, 요람임을 확인해 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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