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관석
(주) 에코프렌드 대표
소리 없이 내리는 안개비도 순천만을 찾는 관광객에겐 갈대와 어우러진 촉촉하고 우아한 광경일테다. 그래선지 안개비 속 순천만 무진교와 갈대밭 데크길에는 수많은 인파가 형형색색의 복장을 하고 개미처럼 오간다. 토요일과 일요일의 순천만 무진교와 갈대 테크길은 순천의 명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 싶다.

순천만과 연접한 우리마을에 한산하고 전원적인 농어촌 풍경은 옛말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마을 신작로를 따라 패스트푸드점과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수많은 펜션과 음식점이 빡빡하게 들어찼다. 그러다 보니 주말이면 주민들의 불편이 말이 아니다. 대형관광버스와 승용차가 좁은 길을 막아 오도가도 못하는 교통체증이 심심하게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열려진 가정집 대문 안으로 불청객이 불쑥 들어와 “김치 좀 팔 수 없느냐”, “된장 좀 팔아라”, “화장실 좀 쓸 수 없느냐”는 등의 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한 아줌마는 떨어진 경첩을 방치한 체 대문을 열어놓고 몇 십 년을 아무 일 없이 살았는데, 이젠 수리비가 좀 들긴 하지만 할 수없이 대문을 수리해 문 잠그고 살아야겠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두 노부부가 사는 집에도 어떤 젊은 불청객이 컵라면을 들고 들어와 식은 밥 한술 얻어먹을 수 없느냐고 하더라는 것이다. 마침 노부부는 저녁밥이 어중간히 남아서 라면 하나 끓여 남은 밥이랑 식사를 마쳤던 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밥을 주지 못해 안타까워 이웃의 젊은 아주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아주머니 왈 “낯선 사람이 불쑥 주거지에 들어와 무슨 되지도 않은 부탁을 하거든 문도 열어주지 말라”고 정색하며 말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길가 쪽에서 일어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동내 맨 뒷집인 우리 집에까지 불청객이 찾아왔다. “계세요, 계세요...” 집 밖에서 사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창문을 열고 보니 안경 낀 건장한 청년 하나가 대뜸 부탁을 한다. “길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차비 좀 빌려 줄 수 없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라 다시 되물었는데 그런 말을 한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어 창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청년은 부리나케 집을 빠져나갔다. 구중궁궐 같은 우리마을 골목길을 걸어 우리집에까지 찾아오기가 쉽진 않을 텐데 참으로 궁금했다.

집 아래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은 담장에 열려있는 호박을 다음에 따야지 하고 두었는데 누군가가 금세 따갔다고 불만을 토한다.

순천만이 관광지가 되면서 연접한 마을에 수많은 외지인이 방문, 변화되어가는 세태다. 평온하기만 했던 마을에 교통체증과 함께 검은 불안이 일렁이는 마을로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든다.

주민들 모두가 바빠서 한 낮에 빈집이 많은데 불상사라도 일어날까 걱정이다. 마을이 특수한 상황에 놓였으니 CCTV라도 설치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유비무한이라고 했던가! 그런데 어쩌란 말인가? 우리 집은 담도 대문도 없어 아무나 마당까진 들어 올 수 있다. 뜰 앞 감나무엔 익은 감이 한 접도 넘게 열려있다. 요즘 물까치가 제철을 만났다. 익어서 물러진 감은 그놈들 차지가 된다.

우리집 노모는 그 감 따다가 순천만 노점에 갔다 팔면 잘 팔린다고 한다. 난 웃으며 그래도 “감나무에 빨간 감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이 마음이 풍족하고 보기 좋은 것 같다”고 무시하며 넘긴다. 가을 뜰 앞 익은 감나무처럼 보기 좋고 정감 넘치는 마을이 지속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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