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규
하늘씨앗교회 목사
한 6년쯤 되었을까? 본질을 잃고 타락해 가는 한국교회에서 목사질 해먹고 사는 것이 견딜 수가 없어 과감하게 사표를 던졌다. 늘 마음의 스승으로 여기던 정약용 선생이 귀양살이하셨던 강진의 ‘다산초당’가는 길목에 있는, ‘남녁교회’에서 할머니 몇 분과 주일예배만 한 번씩 드리는 소위 ‘은거목회’를 4년 했다.

강진으로 옮긴 뒤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 ‘강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크고 멋진 ‘진돗개’로 키워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대전에 사는 딸이 기르던 영특한 애완견 ‘밥퉁이’가 먼저 와서 살고 있었다. ‘밥퉁이’는 ‘강진이’를 마치 제 새끼나 되는 듯이 즐겁게 놀아주고, 맛있는 먹을거리까지 양보해주는 등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문제는 ‘강진이’의 몸집이 커져 가면서 생겨났다. ‘밥퉁이’보다 더 커지고 힘이 세어진 ‘강진이’ 놈이 근성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에는 곧잘 양보를 하다가도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별식을 주었을 때는, 그것을 혼자 차지하려고 으르렁대면서 위협을 하다가, 끝내 제 어미와 같은 ‘밥퉁이’를 물어버렸다. 그 못된 ‘강진이’ 놈을 가만둘 수가 없어 별미를 빼앗아 버린 후, 채찍을 들고 엄히 ‘강진이’를 꾸짖었다.
 
“강진이 이놈! 네가 사람이냐 이놈아? 사람도 아닌 놈이 어찌 사람처럼 약한 자를 학대하며 혼자서 다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려? 그게 정말로 개가 할 짓이냐? 너도 사람이 되려는 것이냐 이놈아?”

내 말에는 물론 뼈가 있다. 나는 짐짓 ‘사람’과 ‘개’를 자리바꿈하고 싶다. 왜? 사람들이 지나치게 변질되어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흔히 사람이 사람답지 않은 짓을 할 때, ‘개 같은 놈’이라는 욕설을 한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 ‘개 같은 놈’이 아닌, 정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너 나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람다운 삶’을 잃고 동물적 본능으로 산다면, 차라리 우리의 이름 ‘사람’을 개에게 물려주고, 우리가 ‘개’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사람의 본성(本性)이 무엇인가?’ 나는 ‘상생(相生)의 삶’일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자생적(自生的) 삶을 산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자연법칙에 따라 자기 삶을 살면 자동적으로 ‘상생의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격체이기 때문에, 스스로 삶의 이치를 깨닫고 상생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 인류가 절망적 상황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단순하게 보면 ‘상생의 원리’에 어긋나는 삶을 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다. 정부의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과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방식에 의해 더욱 극단화되어가는 경제적 양극화는 국가 파멸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상생(相生)의 삶’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자멸을 면할 길이 없다.

지성도 양심도 다 잃어버리고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것을 다 빼앗아 움켜쥔 뒤, 그들만의 최후의 삶을 잠깐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상생(相生)의 삶’의 이치를 모르고 탐욕만 키워가는 마지막 생존자인 그들도 곧 종말을 맞을 것이다. “어! 왜 이러지?” 하면서 까닭도 모른 채 절벽 아래로 추락하여 파멸할 것이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법이니까! 삶은 반드시 더불어 사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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