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살갗에 닿으며 가을이라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던 지난 18일(토) 와온의 바다가 붉게 물들 즈음 해룡면 하사길에 위치한 사랑어린학교(교장 김민해)에서 순천작가회의,길문학회,빗살문학회,사랑어린학교 가족들이 시와 음악과 가을밤을 신나게 버무려 “시낭송 콘서트”장을 열었다. 순천과 여수에서 활동하는 시인 30여명과 사랑어린학교 학생, 학부모, 교사 50여명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시종일관 흥겨움과 탄성을 자아내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순천만 갈대축제> 에 맞춰 18년째 해오고 있는 순천작가회의의 대표적인 사업이기도 하다.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아서 가도록 돕는다” 를 교육목표로 세운 사랑어린학교에서 매주 수요일 저녁 박두규 시인이 9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시문학>을 가르치고 있어서인지 학생들의 시 솜씨가 보통을 넘었고, 학부모님들의 열기도 매우 뜨거웠는데, 자기 자식이 등장할 때는 아낌없는 박수를 쏟아 부었다.

가을은 희망보다 반성과 겸허함, 사랑의 계절이어서 인지, 기성시인들의 시는 자아성찰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등장 하였고, 학생들의 시는 친구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나 자연관찰을 특유의 재치와 솔직함으로 그려 냈다.

오미옥시인은 <녹두를 따며>라는 시에서 술 드신 아버지의 속풀이와 감기, 혼자만의 성장통으로 수척해진 자식을 위해 자주 녹두죽을 끓여 주셨던 어머니를 회상하였고, 송태웅 시인은 <가을의 잠>에서 “가을은 계절의 흉터였나 보더군 이제 물 들어찬 아궁이에 되다만 시들을 불태워 시린 꼬리뼈를 데워야 한다”며 아직도 더 치열하게 살아가야 함을 얘기한다.

 
9학년 박정민 학생은 <월식>이란 시에서 “달이 먹혀 간다. 벌레가 나뭇잎을 갉아 먹듯 사각사각”하며 촉감이 살아나는 시를 선보였고, 박효안 학생은 강아지 똥 누이러 공원에 갔다가 본 풍경을 <중이병>이란 시에서 “저기 저 남자 대단하다. 얼굴의 한계를 극복하고 예쁜 차 한 대 몰고 다니며 실실 웃고 있다”라고 말하며 어떤 여자도 작업을 걸어오지 않는 자신을 상 찌질 이라고 표현하여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사랑어린학교 9학년이면 일반중학교 3학년에 해당할 터, 다른 데 같으면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밤늦게까지 시험공부 몰두할 시간에 시, 악기, 풍물을 익히고 일주일에 한 번은 잔치를 벌이며 학부모들의 배움 시간이 매주 정기적으로 있는 이곳 풍경은 분명 낯설지만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학교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2시간여의 행사가 끝나고, 관옥나무 도서관을 빠져 나오자, 도시를 벗어난 해룡 와온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반짝 윤기를 내며 흐트러지게 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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