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지식기반 문화대국 조선』, 정옥자 저(2012. 돌베개)

영화 ‘명량’ 현상에는 민족적 자존심이라는 코드가 있었다. 저열한 정치현상과 지도자를 보며, ‘이게 아닌데, 우리가 이 정도는 아닌데…’ 하다가 이순신을 보면서 ‘맞아. 우리도 저런 사람이 있었어’ 하며 위안을 했다.

해야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 명분과 의리로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어찌 이순신 혼자였겠는가. 조선은 바로 이런 선비들이 500년의 세월을 이끌고 간 나라였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갈 추동력을 조선에서 찾아내자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조선을 문화대국으로 규정하면서 부국강병, 곧 신자유주의와 대척에 서 있던 조선의 국가경영을 소개하고 있는 책, 현재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앞칸으로만 전진하려는 신자유주의 열차 속 우리에게 옆으로 내리게 하는 용기를 북돋아 주는 책을 소개한다.

 
정옥자라는 국사학자가 쓴『지식기반문화대국 조선』이라는 책(돌베개출판사)이다. 지식기반 문화대국이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나라의 모습이 이미 지난 시절 우리의 모습이었다니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조선이라는 문화대국을 이끈 것은 선비였다는 것을 축으로 선비에 대해서 천착하고, 조선의 문화 자존의식인 조선 중화사상을 통해 조선의 보존논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사대부의 정신을 이어받아 기술직 관료의 길을 시작했던 중인 계급에 대한 재해석까지 조선을 문화사적인 관점으로 정리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겠다는 생각으로 쓴 책이다.

저자가 얘기하는 선비는 곧 학자였다. 직업이 인품을 닦고 공부하는 학자이다. 문사철로 지식을 강고하게 세우고 시서화로 감성을 키우던 인문학자였고, 그러다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사대부로서 사회적 삶을 추구하였다. 인의예지신을 갈고 닦은 뒤, 그를 현실정치에 구현하면서 문화적 도덕적 대동사회를 이끈 것이다.

지행일치의 삶, 아는 대로 행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때도 있지 않은가.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며, 이들은 어려운 일을 참으로 쉽게 했다.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며 도를 행한 조선 노블레스의 전통을 왜 우리는 이렇게 쉽게 폐기했을까?

두 번째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조선 중화사상의 가치이다. 중화사상은 한족의 정치 사회 문화적 자존심을 드러낸 말이다. 그럼 조선 중화사상은 몰주체사상인가? 그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패하면서 주나라로부터 이어져 오던 한족의 적통이 오랑캐에게 맥이 끊겼다는 것이고, 그를 조선이 이어받겠다는 것이 조선 중화사상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왜란 호란 뒤끝에 전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나라를 재건하려는 시대적 과제가 대두되었던 때 생겨났다. 인조반정으로 탄생한 사림정권은 순수성리학적 이념을 강화했다. 이들은 청이 명을 위협하자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중화사상의 법통을 존중한다는 원칙에 따라 존주론과 북벌론을 전개하였다.

이런 맥락에서 청에 의해 명이 망한 뒤에는 ‘천하를 광정’하기 위해 중화문화의 적통을 잇고 조선이 그를 부흥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이를 높이 평가하며 이 사상을 통해 조선이 변방의식을 탈피하여 동북아시아의 문화중심지라는 자부심을 가지면서 한족의 문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조선 고유의 문화를 창달하게 되었고, 또 영정조의 문화부흥기를 이끌었다고 보고 있다.

선비들은 당시 대세인 개화론에 대항하여 조선은 이미 문명국이므로 더는 개화가 필요 없다고 외쳤다. 한걸음 더 나아가 조선만이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유교 윤리를 세계에 전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꼿꼿함과 자신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아닌가. 철학국가 500년의 자존심, 문치로 동점하는 서세에 저항하려 했던 순수함을 되살려야 하지 않을까.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조선의 모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제대로 지적한 것이로 생각한다. 물론 선비를 탐욕스런 양반, 탐관오리로 부분 치환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본질을 뒤덮을 수는 없다. 피케티가 말한 것보다도 더 근본적 차원에서 바람직한 국가와 사회의 모습을 이미 이루고 있었던 것이 우리 민족이었다. 우리가 세상을 창신하려면 법고 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고, 그러려면 제대로 된 옛것을 제대로 탐구해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