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동인 세태 풍자소설집 『돌멩이 하나』

‘뒤틀린 세상을 멋지게 풍자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책의 호기로움이 처음엔 거북스러웠다. 너나없이 걸린 ‘진짜 원조집’ 간판처럼 빤해서였다. 다만 23.5도만큼의 지구 자전축만큼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자는 동인의 명칭이 사뭇 신선했다. 23.5도로 기울어져 있기에 다채로운 날씨와 기후를 갖게 된 지구처럼, ‘빤하지 않은’ 삐딱함으로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줄 수 있겠다는 기대가 일었다. ‘진짜일까?’하는 기대 반 의구심 반으로 ‘원조집’ 문을 두드리듯, ‘진짜 멋지게 풍자할까? 빤하지 않을까?’ 두근대며 책을 펼쳤다.

 
정환의 ‘니는 지는’은 학생들의 화장을 막는 학교와, 어떻게든 화장을 해보겠다며 대항하는 학생들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술, 담배, 화장 등을 학생이라는 이유로 막는 어른들에게 ‘그러는 지는, 어른이면 다야?’ 입을 삐죽이는 학생들의 반발심을 제목에 그대로 담아낸 듯하다. ‘학생들은 화장을 하면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교훈조의 소설이 아닌, 학생들이 왜 화장을 하는지, 어른들의 어느 부분에서 반발하는지 등의 내면을 그리고 있어 주목을 끈다. 무조건 압제하는 권력에는 날서게 저항하면서도, 막상 ‘네 자유의사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돌아보라’는 철학적 권고에는 휘청하는, 아직 세계관이 견고하게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 특유의 혼란함을 세밀하게 녹여냈다. ‘조낸’, ‘시바’, ‘존나’ 등 통통 튀는 청소년들의 언어를 그대로 살려 쓴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구자명의 ‘세 별 이야기’는 ‘안드로메다까지 닿을 것 같은’ 상상력과 비유에 감탄하며 읽은 소설이다. 설정부터 신선하다. 우주에서 벨라지오 형 행성으로 분류되는 두 개의 작은 별, ‘지키오’와 ‘바꾸오’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생긴 지 더 오래된 별인 지키오 행성의 백성들은 두상과 몸매가 둥근 꼴이고, 눈동자는 하나같이 오른쪽으로 달린 사시. 훨씬 뒤에 생겨난 별인 바꾸오 행성의 백성들은 두상과 몸매가 네모 꼴이고, 눈동자는 하나같이 왼쪽으로 쏠린 사시. 지키려는 입장인 보수(保守)와 바꾸려는 입장인 진보(進步)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놀라운 점은 어느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각각의 입장이 가질 수 있는 장점과 단점을 예리하게 비유로 형상화해내었다는 점이고, 진보와 보수 사이에 낀 경계인들의 시선과, 거듭된 혼혈로 인해 다원주의화된 ‘꼬리아’에서의 ‘카오스적 조화’를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한상준의 ‘씨발된 세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부분과 허구의 영역을 혼재시켜가며 소설과 자전적 수필을 오가는 듯한 글을 구사하고 있다. 글 제목을 ‘씨발됨으로 가버린 야만 사회’라는 한겨레신문의 칼럼에서 따온 그의 소설은, ‘연향학파’라는 서생들의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마당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칼럼을 비판적으로 독해한 결론으로 ‘친독재판검사인명사전’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이야기, 라오스의 열악한 교육현실에 안타까워했다는 이야기, 라오스에서 만난 탈북자를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 통일 교육에 대한 이야기, 분단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 등을 좌담회의 형식으로 담아냈다. (그 외에도 6편의 단편소설이 더 있으나 지면 관계상 싣지 못했음을 알려드린다.)

 책을 덮으며, 강물에 던져져 물가에 주름을 남기는 돌멩이의 궤적을 빠짐없이 들여다본 느낌을 받았다. 9명의 소설가들은 각자의 색깔로 덧칠한 돌멩이를 던졌고, 제각기 다른 모양의 파문을 내며 물을 요동치게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잠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내겐 출렁이며 흔들렸던 물의 질감이, 무지개색 돌멩이들의 고운 빛깔이 고스란히 기억에 남았다. 그들의 용기가, 그 호기로움이 부러워졌다. 나도 자그마한 파문이라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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