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처럼 오월이 다시 돌아왔다. 산천이 완전히 푸르게 물드는 이때가 오면, 주변에서는 오월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보답이라도 하듯 지역에서는 5·18을 기념하는 여러 행사들의 준비가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오월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오월정신에 대해 설명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그저 말이기만 하면 그것이 진리여도 의미가 없다. 그 정신이 진정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들 삶에 대입이 되어야 하며, 자신의 언어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오월정신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나로 사는 것’과 ‘외롭게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80년 광주는 군부의 탄압으로 억압받는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살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순응하고 자신의 생각을 숨겨야 했다. 하지만 광주시민들은 그러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여 군부의 행동이 불의라 판단하고,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서라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나’로 살기 위해서 ‘나’를 버리는 숭고한 정신이 있었다.

또한 광주는 ‘나’를 버리는 사람들의 희생을 바라만 보지 않았다. 먹을거리가 떨어져 가고 교통이 끊기는 고립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도, 광주는 질서를 유지하고 단 한 차례의 약탈도 없는 위대한 민주 공동체를 만들었다. 총을 들지 않았더라도 주먹밥과 과일을 나르고 환자를 위해 피를 나누는 그들의 행동 역시 항쟁이었다.

‘나’로 살기 위해 ‘나’를 버리고 그들이 외롭지 않도록 함께 하는 것이 오월정신이라면, 계승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당시 광주를 홀로 둔 사람들은 부채의식을 가지고 어떤 곳에서든 외로운 싸움이 없도록 광주항쟁의 전국화를 위해 나섰으며, 궁극적으로 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냈다. 80년대, 세상을 거대한 어둠에서 빛으로 끄집어 내는데 역할을 했던 오월정신은, 시간이 많이 지나 저마다의 빛깔을 발하기 시작한 다원화된 현재에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계승이란 본연의 형태를 그대로 이어나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전통도 본래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으나 옛사람들의 정신이 이어진다면 계승이라 하는 것처럼 오월정신 또한 80년 광주시민들의 투쟁 그 자체가 아니더라도 오월정신을 담고 있는 행동을 한다면 계승이라 말할 수 있다.

군부가 무너지고 촛불혁명까지 이뤄낸 지금도 완전한 민주화, 오월정신이 실현된 것은 아니다. 가정, 학교, 직장, 그 밖에도 오월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억압받는 공간은 여전히 존재한다. 각자의 삶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는 것이 현재 오월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닐까.

김승건 순천YMCA 간사
김승건 순천YMCA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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