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에서 이제 슬그머니 비켜설 때

5월인데 날씨가 유별나다. 푹푹 찌는 하늘이다. 겉보기에는 선거 열기 또한 뜨겁다. 하지만 6.1 지방선거는 한물갔다. 공식 선거운동이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더운 날 김 빠진 맥주 같다.

순천시장 유력 후보 둘의 공약을 물끄러미 쳐다보니 거기서 거기다. 둘 다 관광에 의료에 경제에 복지에 힘을 준단다. 거기다 누가 돼도 민주당 그물 안이다. 서로 민주당 명패 달고자 아귀다툼을 벌인지 엊그제다. 다른 건 오직 줄 선 사람들뿐이다. 이쪽 사람이 하든 저쪽 사람이 하든 할 것은 이미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번 시장 선거를 두고 말한다. 누가누가 더 마음에 안 드는가 고르기라고. 도토리 키재기라며, 누구는 이명박이고 누구는 윤석열이라고.

두 명의 시장 후보는 순천만이 썩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순천만 속에 사는 주민들에게 물어봤을까? 맑은물센터 아래에서 측정하는 물이 얼마나 나쁜지 알고 있을까?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건 아닐까?

유권자의 마음이 오직 얼마나 편하고 얼마나 잘살고 얼마나 즐거운지에 쏠려있다고 판단하는 건 아닐까? 공약을 보고 있노라면 아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룡에서 얼마나 일찍 모내기하는지, 봉화산 소나무가 왜 누렇게 타들어 가는지, 순천만정원 홍학은 왜 그리 자주 다투는지 순천시장 후보는 알까? 아니 궁금하기는 할까?

시민이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자기를 뒤로하고 타인과 자연을 앞에 두는 위대한 시기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런 시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지도자고, 그 시기를 준비하는 것이 지도자다. 그런 일을 위해 직책이 필요하고 권한이 요구된다.

대중의 뒤꽁무니만 쫓는 건 지도자가 아니다. 대중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대중의 이해타산만 추켜세우는 건 지도자의 할 일이 아니다.

이 점에서 보면 순천만이 아니라 한국엔 지도자가 없다. 아니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정치민주화를 이뤄냈으며 경제선진국임을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이지만 아직 이룰 게 많다. 이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해야 한다.

예로부터 한국은 집중력이 뛰어났다. 오랑캐를 물리치는 일에 사농공상의 차이가 없었다. 국운이 위태로우면 남녀노소가 따로가 아니었다.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빈부의 구별 없이 손을 잡았다. 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민관군이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과거급제 하나를 위해 팔도강산에 천자문이 울려 퍼졌고, 검사 영감이 되기 위해 머리 좋은 수험생이 온 나라 골방에서 법전을 외웠다. 지금도 의사, 검사가 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아파트와 주식, 코인에 목메고 있다. 하나에 꽂히면 모두 우르르 몰린다. 독일보다 벤츠가 잘나가고 프랑스보다 루이비통이 많이 보인다.

누군가 이런 모습을 보고 한국은 '소용돌이 사회'라고 이름 붙였다.

소용돌이에서 이제 슬그머니 비켜설 때가 되었다. 1인당 평균 소득이 3만 불이나 되고, 한국 문화가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우리 지역 대학에도 그런 학생이 많다.

예로부터 새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 전에 새로운 시민이 앞서 나타난다. 그 시민 사이에서 지도자가, 고운 흙이 뭉쳐 백자 항아리 빚어지듯 그렇게 만들어진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새로워지는 것이 먼저다. 하루하루 새로워지며 기다려보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지 않은가.

이정우 편집위원
이정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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