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냐?...위선자여, 먼저 내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마태복음> 7장 3~5절

인간은 하나같이 독선적이고 위선자라는 오래된 진실이 있다. 나만은 내로남불 하지 않는다고 자만하지 말라. 오히려 자신이 영리하고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큰 들보가 눈 안에 있으니.

먼저 인간이 위선자가 쉽게 되는 까닭은 이렇다. 척추동물은 뇌 크기에 따라서 사회집단의 크기가 정해진다(던버의 수, 인간의 경우 약 150명) 그러나, 인간이 점점 더 큰 집단을 이루게 되면서 사회적 삶에서 성공이란 다른 구성원이 자신을 존경하여 모방하고 싶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좋은 평판을 받기위해 실제로는 아니지만 그렇게 보이도록 겉모습에 치중하는 전략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착한척 효자인척 진보인척 도덕적인척 부자인척 강한척 겉모습을 치장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덕적 위선이다. 평소에 다른 사람의 도덕적 결함을 찾아 험담하는 데는 귀신같지만 막상 자신의 이익이 걸린 상황에서는 돌변하는 것을 말한다. 
청문회장 미투운동 조국사태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위선에 한없이 너그러운 잣대를 들이댄 예는 차고 넘친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일에 모든 상황에서 겉과 속이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위선이라는 가면이 내 얼굴에도 씌어져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자.

두 번째는 인간관계, 이념의 양극화, 국가 간의 전쟁 등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는 독선이라는 들보이다. 자신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보고 있다는 순진한 생각(소박한 실재론)과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등과 부합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확증편향)이 쌓이면 실재로 자신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정답을 미리 결정해 놓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답정너가 되어버린다. 

독선의 무서운 점은 아주 쉽게 개인에서 집단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좌든 우든, 진보든 보수든 나만 옳다는 독선이 눈을 가리는 순간 타협은 없어지고 상대방은 타도해야할 악이 되어 이념의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심해진다. 종교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어떤 갈등에도 자신의 책임이 어느 정도는 있음을 인식하면 내로남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 인정하면 바뀔 수 있다. 자신의 결함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처음에는 몸속의 가시를 뽑아내듯 아프겠지만 묘하게도 약간의 자부심과 명예로운 감정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조너선 헤이트의 <행복의 가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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