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가 있었다. 모두 피리를 불며 놀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 피리는 하나밖에 없었다. 한 아이가 말했다. “이 피리는 내가 가져야 해. 우리 중 내가 피리를 가장 잘 불거든. 멋진 피리 소리를 들려줄게두 번째 아이가 말했다. “아니야. 내가 가져야 해. 내가 만들었잖아.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데세 번째 아이가 말했다. “너희들은 다른 악기가 많잖아? 난 이 피리 아니면 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이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인 아마르티아 센이 정의의 다원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보인 사례다. 그는 사회의 상황에 따라 정의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며 존 롤스의 일원적 정의론을 비판한다.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차이, 시대적 상황 등이 다른데 오직 하나의 정의만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전부터 내가 피리를 가지고 있었으니 절대로 내놓을 수 없다는 주장은 어떤가? 피리가 하나뿐이라는 전제하에 가장 정의롭게 분배할 수 있는 방법을 열린 마음으로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사회의 변화를 무시하고 기존의 관습을 붙잡고 있으면 머지않은 장래에 하나의 피리마저 부서질 것이다. 우리 사회가 나눌 수 있는 재원도 하나의 피리처럼 한정되어 있다. 피리를 여러 개 만드는 일도 필요하지만, 내가 피리를 가지고 있는 게 현시점에서 진정 정의로운 것인지 따져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더구나 사회공동체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에서 벗어난 특권은 말해 무엇하랴!

공로연수제는 특권이다

요즘 한국은 대통령도 함부로 다리를 벌리거나 발을 뻗을 수 없는 사회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인정되는 사회가 '정상 사회'. 특권이란 당연하지 않은 특이한 권한이다.

특권은 어떤 신분이나 지위,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나 이익이다. 예전에는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누가 봐도 특권이라 인정하게 되었다. 공로연수제가 만들어진 30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지만, 한국 사회의 특권은 빠르게 많이 줄고 있다.

공무원 공로연수제는 특권이다. 무노동 유임금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오래전부터 있었다. 잘못되었다고 꾸준히 지적하고 폐지의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거나 약간의 변형만 주면서 제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행정기관 내의 특권은 자체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무원 사회의 자체 정화기능을 노동조합이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공로연수제는 공무원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같은 배를 탄 선배에 대한 예우일 수도 있고, 인사 적체에 대한 불안감이나 승진에 대한 기대심의 소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떳떳한 공직 이수가 더 아름답고, 인사 문제는 길어야 6개월에서 1년의 편차가 필요할 뿐이다.

시의회는 행정기관이 시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따르지 않을 때는 이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시민의 의사를 공무원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는 기관이 시의회다. 공무원이 개인적 이익을 좇을 때 공동체의 이익을 중시하고 설득하여야 한다. 이익 분배에서 정의로운 방법이 무엇인지 해결방안을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시의회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순천 시의원들의 멸사봉공하려는 열의와 치열한 노고를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순천 시의회에서 공로연수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시의회 회의록을 찾아보면 누가 누가 공로연수에 들어가는데 오랫동안 수고하셨으니 모두 박수 쳐 줍시다는 얘기만 들린다. 그런 박수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쓴웃음을 짓게 하지 않을까. 순천시의회가 공무원 사회의 비상식적인 특권을 해체하고 구태를 개선하는 생산적인 대의 기관이 될 때, 시민들의 진심 어린 박수를 받을 것이다. 이 박수는 자려고 누웠을 때 미소를 머금게 할 것이다.

피리를 공유하자

한국 사회에서 공로연수라는 명목으로 1년간 쉬면서 월급만 받는 공무원이 어림잡아 한 해 6천 명에 이르고 이에 드는 재원은 수천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전라남도만 해도 2021년 한 해에 연인원 3천여 명에게 200억 원 넘게 지급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구가 180만여 명인 전남도가 이 정도인데, 전국으로 확대하면 엄청난 금액일 것이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는 공무원이라면 특권을 내려놓고 정당하게 일하며 떳떳하게 월급 받기를 원할 것이다. 염치없이 무전 취식하려는 것도 아닐진대, 노동은 하지 않으면서 이익만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옛날 맹자가 양혜왕에게 물었다. 맹자는 당신은 왜 하필 이익을 입에 올립니까라면서, '임금이라면 정의를 말해야지 돈 몇 푼에 양심을 팔아서는 안 되지요'라고 타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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