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은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늘 그리워했던 정겨운 고향과도 같은 풍경이다. 야트막한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과 그 앞에 넓은 들, 들 사이를 구불구불 흘러가는 강, 갯벌, 너른 갈대밭, 그리고 멀리 보이는 섬들. 순천만습지공원에서 용산전망대까지 이르는 길에서 이 모든 풍경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길에서 만나는 풍경들은 섣부른 개발보다는 보전에 무게를 둔 정책으로 전환을 이끌었던 시민과 지방정부의 결단과 협력이 빚은 역사의 산물들이다. 멸종위기 조류와 갯벌저서동물, 염생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이 풍부하여 국제적으로 중요한 생물서식지로 그 탁월한 가치를 인정받아 습지보호지역, 람사르 사이트, 명승으로 지정되었고, 지난해에는 세계유산으로까지 등재되었다.

순천만 보전의 역사는 보전생물학의 교과서다.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를 높여가고, 습지와 주민을 위한 정책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골재채취사업 취소 이후 순천만을 위한 행동 즉, 민관학의 거버넌스가 끊임없이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결정의 시기마다 민관의 협력은 빛이 났다. 2003년 순천만갯벌의 ‘습지보호지역’ 지정으로 제도적 장치 마련, 2008년 제10차 람사르총회 ‘세계NGO대회’ 순천 개최로 세계적 브랜드화 시동, 2014년 ‘순천만습지 보전관리 및 지원사업 등에 관한 조례’ 제정으로 입장료 환원을 통한 거버넌스 균형관리.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간 결과 순천시는 람사르협약의 '습지보전과 현명한 이용기준'에 가장 부합되고 모범적인 도시로 인정받아 2018년에 람사르습지도시 1호로 인증되었다. 순천만갯벌을 건강하게 보전하려는 순천시의 노력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지난 2월 2일은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협약 사무국에서 정한 ‘세계 습지의 날’이었다. 올해 습지의 날 주제는 ‘사람과 자연을 위한 습지행동(Wetlands Action for People and Nature)’이다. 캠페인의 핵심은 습지가 사라지지 않도록, 재정적, 인적, 정치적 자본을 투자하라 것이다. 습지는 지구 표면적의 6%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모든 생물종의 40%가 살고 있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이며, 오늘날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습지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습지는 인류에게 식량과 수자원을 제공하고, 습지생물에 의한 수질정화, 폭풍우와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 완화, 온실가스인 탄소의 흡수원이자 온도조절장치로서 기후변화 대응, 생태관광과 휴양기능 등 습지의 가치는 놀라울 정도다. 이토록 습지의 가치가 높으니 잘 관리하고, 복원하라고, 그게 사람과 자연을 위한 사랑, 습지행동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태자원이 곧 미래의 경제자원임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순천만이다. 연안습지 관리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순천만습지 사례로 분석한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총 2,334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발생하고 4,494개의 일자리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했다. 자연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보전은 자연과 인간을 모두 살찌우는 가장 적극적인 투자이다. 헌데, 최근 들어 순천시의 ‘사람과 자연을 위한 습지행동’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소득증대라는 명목으로 자연경관과 생태자산을 훼손하며, 순천만습지 불법개발행위는 막지 못하고, 갯벌에 늘어만 가는 폐어구와 남획의 현장은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주민들은 소외되고 있다고 느끼고, 시민사회는 순천시가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를 빛내는 일보다 활용과 개발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고 주장한다. 순천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생태학적 전망은 시민의 참여 속에서 나온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소통의 창구는 닫혔고, 순천만을 꽃피웠던 거버넌스의 역사는 퇴행하고 있다. 과거 성장시대를 주도했던 개발의 망령이 꿈틀꿈틀 깨어나 세련되고 진화된 손짓으로 순천만을 ‘공유지의 비극’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2월은 2월 2일 ‘세계습지의 날’과 2월 28일 ‘흑두루미의 날’이 있는 습지를 생각하고, 습지를 위한 행동하는 달이다. 순천만이 우리에게 전해준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며 순천만에 대한 사랑이 누구를 위한 사랑이었는지 되돌아 보게 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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