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손죽분교 (제공=정태균)
여수 손죽분교 (제공=정태균)

100년 전, 주민들의 힘으로 학교를 세웠다. 남쪽바다 작은 섬 바닷사람들은 자식들의 배움터를 만드는 일에 직접 땅을 고르고 돌을 날랐다. 1922, 마을 뒷산 서당솔밭에서 옛것과 새것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던 학동(學童)들을 위해 섬 어른들이 사재(私財)를 털어 학교가 만들어졌다. 부산, 인천, 목포, 여수, 일본 근해까지 어장을 부리던 여수 손죽도 바닷사람들은 새로운 문화를 일찍 접했기에 학교는 후대를 위한 절실함이었다.

19233304년제 사립 손죽보통학교가 최초로 인가되어 개교했다. 19366년제 손죽사립심상소학교로 허가되었고, 194141일 손죽사립초등학교로 개칭되었다. 19461015일 손죽공립초등학교로 승격, 1953년 소거문도분교, 1960년 평도분교, 1964년 광도분교가 설립되어 3개 분교장이 운영되었다. 198531일 학생 수는 꾸준히 줄어들어 인근 초도초등학교 손죽분교로 통합되었다. 2015년 거문초등학교로 편입되어 손죽분교로 이어오다 20223월 폐교가 된다. 작년까지 초임교사 1명과 6학년 1, 3학년 1명이 다니던 100년 역사의 학교는 시대의 변화 앞에서 자연스레 소멸했다.

마지막 졸업생을 품에 안고 학교를 보냈던 할머니는학교를 지속시키기 위해 수년 동안 마을과 내 자식, 친척, 손녀들까지…. 우리 가족들이 나서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 막내 손녀가 올해 4학년인데, 졸업한 언니가 여수 시내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해 혼자 다니게 할 수가 없어 폐교를 눈물을 머금고 받아들였다라며 학교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을 전했다.

학교는 그 마을의 역사이자 주민들의 장소애가 특별한 공간이다. 특히 손죽도 학교는 주민들의 희사(喜捨)와 울력으로 눈물과 애정이 남겨진 곳이다. 일제강점기 신문물과 신학문을 교류하던 장소였으며, 여순사건 당시 인공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오르내렸던 비극의 공간이었다. 전통을 재현하고자 화전을 놀던 지지미재에 올라갈 수 없었던 어머니들의 축제장이었다. 단순히 배움의 장소를 넘어 일상의 시작이 되었던 곳이다.

손죽분교, 섬처럼 잠시 멈췄다가 다시 세워지길 바란다.

정태균 전라남도 선발전지원센터 전문위원
정태균 전라남도 선발전지원센터 전문위원

# 손죽도는 섬 고유의 생태와 역사·문화자원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어 전라남도가고 싶은 섬으로 2017년 선정되었다. 지속가능한 섬 공동체를 위해바다 위 정원박물관을 주제로 주민참여형 섬가꾸기를 진행하고 있다. 여수시 삼산면 손죽열도의 거점 섬으로 일 1회 여수에서 쾌속선을 운항한다. 소요 시간 1시간 20. 상시거주 인구 10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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