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계도 없이 명창 선생님 선창에 잘도 따라부른다. 예닐곱이 3, 4년 넘게 배워온 판소리동호회다. Q는 일테면, 학습 부진아다. 따라부르기도 여태껏 제대로 못한다. 들어가는 1박을 늘 놓친다. 7박은 애당초 잊은 듯 9박에 맞추니 이 중머리도 아니고 저 중머리는 더욱 아니다. 박은 젬병인데, 소리통은 그나마 괜찮다는 평이다. 정작 Q는 느긋하다.

“‘전라도 순창 담양 새갈모 떼는 소리로 짝∼ 짝∼ 허드니마는’”

“‘전라도 순창 담양 새갈모 떼는 소리로 짝∼ 짝∼ 허드니마는’”

“‘허드니마는’을 올려야지, 내려가면 안 되지요. 다시요.”

“‘…허드니마는’”

심청가 중 ‘심봉사 눈 뜨는 장면’ 중 자진모리 한 대목이다.

“슨상님. ‘짝∼짝∼’은 1박 뒤에 오는 거시기가 맞제라.”

“1박 치고 들어가야지요.”

…이어지는 자진모리. 

“‘가다 뜨고, 오다 뜨고, 서서 뜨고, 앉아 뜨고, 실없이 뜨고, 어이없이 뜨고, 화내다 뜨고, 울다 뜨고, 웃다 뜨고, 떠보느라 뜨고, 시원히 뜨고, 앉아 노다 뜨고, 자다 깨다 졸다 번뜩 뜨고’가 모두 1박이니까, 여기서는 쭉 나가요.”

“오메, 숨 차라.”

“이 대목이 젤로 신명 나느만.”

숨이 차면서도 다들 함박웃음을 짓는다.

“숨도 쉬고 뱉을 데를 잘 알아둬야 해요. 자, 다시요.”

“‘…시원히 뜨고, 앉아 노다 뜨고, 자다 깨다 졸다 번뜩 뜨고’.”

“금메. 숨 넘어 가겄네, 그랴.”

‘졸다 번뜩 뜨고’ 한 뒤 다음 박으로 넘어가려는데 Q만 인자 ‘뜨고’를 내뱉으며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박도 박이제만, 이 대목은 흥을 앞세워야 허는 디, 같고만.”

“박∼을 맞춤서 흥∼을 내세워야제, 라.”

“Q 선상은 박만 맞추믄 소리는 쥑이는디.”

“목소리는 부럽제만, 나는 아니라고 보느만요.”

“지는 숨질도 짤브고 박은 인자 놔버맀응게, 그러코롬 가야제, 으짜것소.”

Q도 누군가는 ‘답답해’ 하는 바를 모르지 않으나, 생긴 대로 놀 수밖에 없다며 눙친다.

“일고수, 이명창, 안 그라요. 박이 안 되믄 소리는 쪼매 그러지라.”

“웃다가 금방 울기도 허는 거시기가 판소리기넌 허제마는.”

“큼메마시. 흥으로 그러는 거시제, 웃다가 금세 박으로 어찌케 울린다요?”

“박이 앞이고 흥이 다음이랄 것 같은디, 어찌케 봐얀담요, 선상님?”

“열두박 안에서 늦기도 하고, 빠르게 가기도 하고. 아주 느린 장단이 있는가 하면 막 몰아치는 대목도 있고, 그러잖아요. 열두박 안에서 흥을 담아내는 것이지요.”

명창 선생님이 가름하자,

“열두박이 첨부터 정혀졌다기보다는 이러코도 부르고 저러코도 내지르다 이러코롬허는 거시기가 맞겄다, 저러코롬 허는 거시시가 더 좋겄다 혀서 그리 되잖았으까요?”

“긍게. 구전되믄서 박이 자연시랍게 맹글어졌을 거 같어.”

“춘향가도 동편제와 서편제가 달르고 중고제도 있고 글잖어요. 또 머시냐, 명창 슨상마다 소리며 가사까장 달르기도 허고. 허니께, 시작은 흥이고 난중에 열두박이 맹글어지지 않았나 허고만요, 지 생각도.”

“즐길라고 배우는 거시기제. 흥이 먼첨이냐, 박이 우선이다, 따질 건 아니라고 보느만요.”

누군가의 맞장구에,

“우리 가락이 다시금 뜨는 것도 김수철이가 트롯트에다 우리 가락 붙인 종적도 있고 퓨전음악이람서 전통 악기와 서양 악기가 어울려 한 판 놀기도 허고, 아, ‘이날치’ <수궁가> 가락이 유행 안 헙뎌. 세계적 그룹 BTS까장 우리 가락을 현대적으로 불러대기도 허고. 요참에, JTBC 풍류대장에 나오넌 ‘서도밴드’ 그룹 보니께, 걍 전율이도만. 그런 판인디, 고색창연헌 박으다 너무 집착허는 거시기가 쪼매 문제가 있다고 보느만요, 지는.”

Q가 나름 들먹이자,

“그런다혀도 판소리서 박을 몰르거나 박을 무시허믄 그건 판소리라 헐 수 읎제.”

“근다고 박에 너무 치우치믄 흥이 쪼매 빠지긴 혀.”

“달구새끼가 뒤냐, 알이 먼첨이냐 허는 거시기가 중심이 아니제. 판소리를 배우고 즐김서 늘그막에 찾은 행복이니께, 각자금 나오는 만큼 소리도 허고 느끼는 대로 흥도 돋움서 재미지게 노는 게 젤 아녀?”

“그라제. 흥이건, 박이건 즐거워야제, 안 그런감?”

“암만, 암만.”

명창 선생님도 문하생 아닌 늙다리 동호인들이 내뱉는 말씨름에 살포시 웃음을 머금는다.

소설가 한상준. 전북 고창 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푸른농약사는 푸르다』, 산문집 『다시, 학교를 다자인하다』
소설가 한상준. 전북 고창 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푸른농약사는 푸르다』, 산문집 『다시, 학교를 다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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