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예산에 인건비를 허용하는 것

기후변화는 기상학 같은 자연과학적인 일이라, 그 대응도 무슨 과학기술로 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착각입니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는, 기후변화 때문에 우리 모두의 삶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해야 할 일은 <기후변화 속에서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입니다. 그걸 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참여예산에 인건비를 허용하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2022년 순천시 주민참여예산제 운영계획의 일부인데요. 연간 약 130억 원의 예산을 참여예산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즉, 130억 원에 대해서는 순천시민들이 그 쓰임새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게 있습니다. 아래 내용을 잘 보시면, 주민들이 예산을 어떤 곳에 쓰자고 제안하더라도, 인건비는 절대 안 됩니다. 모두가 시설비만 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순천시청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동법 시행령 제3조에 따라, 민간에게 교부하는 보조금에 대해서는 운영비나 인건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다른 법률에 따라 보조금을 지급함에 있어서 인건비를 허용할 때에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비해서 살기 좋은 도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할 때 꼭 필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바로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당장 실업이 되어 소득이 없는 사람에게, 보조금으로 농업기반시설을 만들어 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차라리 그 사람이 농사를 지었을 때 인건비를 보조해주는 것이 농업도 활성화하고 취약계층의 소득도 증대시키는 방안이 아닐까요?

물론, 예산 낭비는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업을 해야 취약계층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지, 즉, 가장 효율적인 예산 사용이 될지는 취약계층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참여예산제의 취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산을 어디다 사용해야 가장 좋을지는 시민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 예산의 사용처를 시민들이 직접 제안하게 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시민들은 계속해서 인건비가 필요한 사업들을 제안하는데도, 저 관련 법률들 때문에, 그런 창의적인 사업들이 집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조금의 인건비를 허용하기 위한 법률 개정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제6조 및 동법 시행령 제3조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금지한 조항을 폐지하는 겁니다. 또 하나는, 그것보다 규모는 작지만, 참여예산제에 의해 지급되는 보조금에 대해서만 인건비와 운영비를 허용하는 겁니다. 그러면 보조금 전체의 인건비를 허용할 때보다, 예산 통제가 더 잘 될 수 있고, 점진적인 변화를 이뤄낼 수 있습니다.

장용창 행정학 박사. (사)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장용창 행정학 박사. (사)숙의민주주의 환경연구소장.

이렇게 참여예산제에 인건비만 허용하면, 이것은 바로 참여소득을 확대하는 아주 쉬운 길이 될 겁니다. 추가적인 예산 배정 없이도, 이미 참여예산제로 배정된 예산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참여소득을 대폭 확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좋은 방법은, 아쉽게도 순천시장님의 권한이 아니라, 국회의 권한입니다. 위 그림에 보여드린 것처럼 지방재정법 제39조를 개정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이 아니라, 시민들의 창의적인 발상이 사업으로 될 수 있도록 돕는 법률 개정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국회의원이 제발 나타나주기를 기도합니다.

저작권자 © 순천광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