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 전국 대행진단'이 지난 9일 순천 여순항쟁탑 앞에서 간담회를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 대행진단'이 지난 9일 순천 여순항쟁탑 앞에서 간담회를 열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민주노총 총파업대회가 열리던 지난 20일, 고 홍종운 학생을 추모하는 리본을 달고 대회에 참가하였다. “학생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현장실습을 폐지하라!” “안전한 노동권을 보장하라!” 고 홍종운 군의 죽음은 노동자와 노동자가 될 어린 학생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안전장비도 없이 혼자서 잠수작업을 하도록 방치된 고등학생이 어두운 바닷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고 홍종운 군의 부모님과 가족들의 심정은 얼마나 슬프고 원통할까! 마음이 너무 아프다.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대행진단(이하 대행진단)이 10월 5일 제주평화공원에서 시작하여 부산, 울산, 경남 창원, 경북 경주, 대구를 거쳐 여수에서 ‘여순사건 위령비’를 참배하던 지난 9일에도 우리는 사고가 일어난 현장실습 현장에서 고 홍종운 군을 추모하였다.

대행진단은 여수시 만흥동 ‘여순사건 위령비’ 앞에서 참배하였다. 위령비에는 “만성리 희생자는 1948년 11월 초순경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초등학교 수용자 중 수백 명의 민간인이 이곳으로 끌려와 집단희생된 곳입니다.”라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다. 그런데, 민간인들이 누구에 의해서 끌려왔으며, 그들이 했던 부역혐의가 무엇이었고, 누가 어떤 이유로 학살했는지에 대한 원인과 가해 주체에 대한 명시가 없이 그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는 내용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지역대표들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정확히 제시하였다.

“위령비의 명칭은 ‘여순항쟁 위령비’로 수정되어야 합니다. 이 항쟁은 제주에서 일어난 4·3항쟁을 진압하고 제주 동포를 학살하라는 이승만 정권의 명령을 거부하고 들고 일어선 14연대 군인들의 저항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분들께서 이승만 정권의 명령에 복종하고 제주 동포에게 총을 쏘아야 했을까요?” 당시에 학살당하던 많은 사람은 이같은 질문을 하면서 얼마나 피맺힌 통곡을 했을까?

14연대 군인들의 저항은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났으며, 1948년 11월 초순경에 민간인들에 대한 학살이 있었다.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은 제주민들의 항쟁에 대한 학살에 가담하지 않고 저항했던 군인들과 이 군인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민간인 학살에 명분을 주고, 지속해서 탄압하기 위해서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을 제정하였다. 국보법은 이렇듯 여순항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태어났던 것이다.

국보법은 여순항쟁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반란자',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서 학살하고 살아남은 유가족에게는 연좌제로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하게 탄압하였다. 또한, 위로와 도움을 주는 이웃들까지 처벌하여 비인간적인 혐오 속에서 살도록 강제했던 억울한 세월을 보낸 기간은 국보법이 연명해온 73년과 같은 기간이었다.

여수에서 이순신광장을 거쳐서 시민회관으로 행진하면서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어린 세대들에게 여순항쟁에 대해서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대행진단은 지난 9일 여수에서 이순신 광장을 거쳐 시민회관으로 거리행진하고 있다.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대행진단'은 지난 9일 여수에서 이순신 광장을 거쳐 시민회관으로 거리행진하고 있다.

지난 6월 29일, ‘여수·순천 10.19일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그런데 국보법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에 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지만, 여순항쟁의 원인과 과정을 이야기하면 국보법을 위반하게 된다는 것이 참으로 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0년에 ‘제주 4·3사건 특별법’을 제정하였지만,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은 여전히 국보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순천에서 팔마체육관 안에 있는 ‘여순항쟁탑’을 참배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순천유족회 회장님은 “우리 서민들은 법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 법 없이도 살 수 있으며, 서로 아껴주고 함께 도우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필요 없는 법으로 우리들을 갈라치고 자손까지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국보법은 그동안 여수와 순천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갈라치고 분리하며 공동체를 파괴해왔고, 이 땅의 방방곡곡에서 함께 돕고 주인으로 살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는 악법이었다.

'국가보안법 폐지 전국 대행진단'이 지난 9일 간담회에 앞서 순천 여순항쟁탑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대행진단'이 지난 9일 간담회에 앞서 순천 여순항쟁탑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여순항쟁 유가족들은 국보법으로 학살당한 가족을 추모하는 것도 죄가 되어 무자비한 차별과 혐오를 받았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묻고 살았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가족들의 삶을 추모하고 자신들의 바람과 희망을 담아 팔마체육관 앞에 여순항쟁탑을 세웠다. 여순항쟁탑에서 좌우로 갈라진 돌은 국토분단과 좌우로 대립하는 이념대립을 상징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위로 높게 뻗은 돌은 통일 의지를 담아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대동세상에 대한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고 했다.

여순항쟁은 전라남도 주민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5월 광주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2000년에 제정되었고,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이 1995년 제정되었지만, 여전히 4·3의 진실과 광주항쟁의 진실을 제대로 배우는 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은 국보법이다. 국보법이 폐지되지 않고서는 5.18민주화운동도, 4·3항쟁과 여순항쟁의 정신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여순항쟁 연구가 주철희 박사 강연자료
여순항쟁 연구가 주철희 박사 강연자료

대행진단은 지난 11일 대전 골령골을 방문하였다. 대전 골령골에는 약 7천여 명이 학살되었다고 추정되는 인류 역사상 가장 긴 무덤이 발굴된 곳이다. 그곳에서 임재근 대전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소장의 강의를 들으며 우리는 여순항쟁의 정신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여순항쟁에 참여한 14연대 군인들은 여수와 순천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온 군인들이었으며, 그 정신은 우리 민중에게 스며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남긴 호소문에는 여순항쟁의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제주 4·3항쟁과 대구 10월항쟁, 여순항쟁 유족들께서는 우리에게 고맙다고 했다. 대행진단과 지역대행진단이 국보법폐지의 깃발을 들고, 국보법에 의해 학살된 희생자 유족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행진하고 항쟁기념탑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어려운 삶을 살아내시고 역사의 진실을 지켜주신 유족들이 정말로 고맙고 자랑스럽다.

국가보안법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

첫째, 여순항쟁과 제주 4·3항쟁, 5·18 민중항쟁이 이 땅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실천했던 정의롭고 당당한 항쟁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되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역사의 진실을 교육할 수 있어야 다시는 이러한 학살이 반복되지 않고 우리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미자 교육학박사,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대행진단 공동단장
박미자 교육학박사,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 국가보안법폐지 전국대행진단 공동단장

대행진단은 지난 15일 서울을 행진하고 국회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한다' 기자회견에서 민형배 등 21명의 국회의원이 국보법폐지 법안을 발의하였다.

민주주의와 국가보안법은 공존할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민주와 자주, 통일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하기 위해서 국보법을 반드시 폐지할 것이다. 국전국대행진을 시작했던 지난 5일부터 시작했던 국회 앞 1인시위는 계속되고 있으며, 전국대행진을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고 폭넓게 전개하여 국보법을 반드시 폐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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