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새가 유리창에 계속 부딪히네.”
아내가 작업실로 쓰는 별채에 풍경을 환하고 시원스레 보려 벽마다 유리창을 새로 냈는데, 통유리로 된 남쪽 창문에 새가 날아와 자꾸 부딪히곤 했다. 
“당신이 걸어놓은 저 그림이 창에 비치는 걸까?”
아내가 그린 소나무 수묵화가 창문을 통해 보였는지 유리창에 앉으려다 주르르 내려가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는 날아갔다. 같은 새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벌써 여러 날이다. 
“솔거의 ‘노송도(老松圖)’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죽었다는 전설 같은 전설을 말하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유리창에 앉으려고 저리 푸드덕거리다 가냐고. 며칠째 저러잖아.”
“저러다 죽으면 어떻게 해. 그림을 치워볼까. 새들이 투명 방음벽과 고층 건물 투명 유리창을 창공으로 알고 날다가 부딪혀 죽는다는 거야. 그런 기사를 봤어. 한 해에 785만 마리가 그렇게 죽는대. …단층에 조그만 건물인데, 왜 저렇게 와서 저러지? 정말, 당신 말처럼 저 그림이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네.”

소나무 수묵을 얼토당토않게 비유하고는 아내는 아무튼 웃음까지 얇게 내비쳤다. 
“785만 마리나? 로드킬이 아니라 스카이킬이네.”
“윈도우킬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뭐라 부르건 간에, 새들이 하늘을 날다 부딪혀 죽는다는 걸 알지도 못했어, 나는.” 
통계를 어떻게 냈는지는 모르지만, 해마다 785만 마리가 죽는다니 어마어마한 숫자다.
“건물 한 채에 1.07마리가 매년 죽는다는데, 통계에 잡히지 않는 죽음이 더 있지 않겠어?”
“조류인플루엔자(AI)와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 등으로 살처분되는 가축들 문제만 아니네.”

“인수공통감염을 염려한다며 깡그리 살처분하는 행태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가축들 살처분과 달리 새들은 자기들 공간이나 다름없는 하늘을 날아다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인공구조물 때문에 죽는 거잖아.”
“그러게. 새들이 하늘의 주인인 거, 맞네.” 
“투명 방음벽보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게 대부분이래. 그중에는 새끼들 먹이 구하러 다니다 죽은 어미새도 있을 거고. 그럼, 그 새끼들도 굶어 죽을 거 아냐?”
“새들이 투명한 유리를 피해가야 할 방해물이라고 어찌 알겠어.”

“먹이를 찾아다니다 부딪혀 죽는 거잖아. 생존을 위한 노동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인간 세상과 다르지 않아.”

소설가 한상준. 전북 고창 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푸른농약사는 푸르다』, 산문집 『다시, 학교를 다자인하다』
소설가 한상준. 전북 고창 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푸른농약사는 푸르다』, 산문집 『다시, 학교를 다자인하다』

‘일하다 죽지 않고’ 퇴근해 ‘저녁이 있는 삶’을 끝내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아내가 떠올린 듯하다.
“고층 건물이 많은 대도시가 새들 죽음의 장소네…막을 방법이 없는 거야?”

“우선, 저 그림부터 치워야겠어. 금방도 탁, 하는 소리가 났잖아.”
“저게 뭐야. 저거.”
남쪽 창문 앞에 심은 미스김라일락 밑에 새가 누워 있다. 
“어머, 방금 유리창에 날아든 새네. 죽었나 봐. 어떡해, 어떡해.”
아내 호들갑에 나도 눈을 치켜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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