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주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소장
최현주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 소장

프랑스 혁명 직후인 1793년 프랑스 서부 지역의 방데에서는 ‘최초의 근대적 집단 학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시민혁명의 급진적 개혁에 반발하고 봉건귀족과 가톨릭의 복권을 기도하는 귀족과 농민군 연합의 봉기에 대하여 시민혁명의 주체 세력들은 이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방데 지역의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당시의 권력집단은 혁명의 당위와 신념을 지켜내기 위해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아갔다. 불신과 분열이 키워낸 공포 정치의 결과물이었다. 하여 유대인 출신의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이라는 저서에서 “프랑스혁명은 실패작”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하였다. 아무리 위대한 이념과 정치적 신념이라 할지라도 인권, 특히 개인의 생명권을 보장하지 않고서는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는 함의가 실려 있는 선언이라 할 것이다. 

70여 년 전 전남 동부지역은 또 하나의 프랑스의 방데였다. 두 사건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나 지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가 권력이 주도하는 냉혹하기 짝이 없는 인권 부재, 인명 훼손의 학살이라는 공분모는 동일할 것이다.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일찍부터 방데라는 지명은 금기어였다. 여수와 순천이 반란이라는 낙인 아래에서 금기어로 작동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방데 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기억문화 유산과 역사 테마파크 ‘퓌디푸’를 짓고 지나간 역사에 대해 반성하고 폭력이 없는 평화와 인권이 보장되는 미래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다행히 여순10‧19도 늦었지만 70여 년 만에 특별법이 제정되어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 그리고 국가가 주도하는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리게 되었다.

이번 특별법 제정이 갖는 의의는 무엇보다 비로소 국가가 나서서 잘못된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지역민들의 한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바는 이번 여순특별법 제정이 여순10‧19의 종결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순10‧19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 희생자와 유족들의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하고 비극적인 삶의 내력들이다. 

그들의 힘겨웠던 삶에 공감하고 그들의 눈물을 씻어내는 일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여순특별법 제정의 궁극의 이유이다. 여순10‧19의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규명함으로써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지금 여순10‧19라는 역사적 과제 앞에 우리가 서 있는 까닭일 것이다. 특별법의 시행과 실천을 위해 효과적인 위원회를 구성하고 조례를 제정하고 참다운 진상규명의 최종 심급이 바로 희생자와 유족들의 해원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족들의 한과 상처의 치유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앞으로 우리의 후손들이 인간이 인간답게 보장받고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생명존중의 세상에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족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들이 나라다운 나라에 사는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과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한 노력은 여순10‧19공동체의 진정한 복원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이제 여순10‧19도 5‧18공동체와 같은 절대적이고 명예로운 공동체를 정립해야 한다. 10·19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지금 우리의 현재적 가치로 수용하기 위해서 순정한 여순10‧19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순10‧19를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역사로 수렴하고 공동의 아픔과 상처로 공감하는 인간의 실천적 개입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자신의 주장과 당위를 강조하거나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가늠하는 폐쇄회로의 닫힌 담론보다 많은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는, 지금 여기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통감각으로의 해석과 개입이 필요하다. 70여 년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왔던 유족들과 지역민들의 상처받은 삶에 공감하는 것으로부터 10‧19의 역사공동체는 굳건하게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여순공동체의 복원을 위해서는 이제 자신의 신념과 지역과 조직을 넘어서야 한다. 어떤 이들은 10‧19에 왜 여수, 순천의 지역명이 붙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하기도 한다. 10‧19가 여수, 순천을 넘어 광양, 구례, 고흥, 보성으로 확산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협소한 지역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통찰의 반영인 셈이다. 하여튼 다양한 토론과 끝이 없는 논쟁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10‧19라는 순정한 공동체를 훼손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떤 당위와 명분으로도 공동체가 붕괴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뿐이다. 지역과 조직, 혹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배격하려고 해서는 10‧19공동체는 존립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사실 10‧19의 비극은 프랑스의 방데처럼 정치적 이념 혹은 과도한 신념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였다. 이념이나 정치적 판단을 앞세워 사람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념에 기초한 정치적 판단의 문제는 이분법적 사유에 있다. 이념과 신념을 기반으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고 이에 윤리와 도덕을 끌어오면서 적들을 악의 대상으로 규정, 기성 사회로부터 분리 혹은 분열시키고 심지어는 학살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존중받고 사람이 주인이 되는 10‧19공동체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는 사람이 사람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적어도 여순10‧19의 비극이 아직도 강력한 징후로 남아 우리 지역민과 유족들의 통한의 역사로 살아 숨 쉬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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