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보다 덜 썼네요.”
“이거 드세요.”
전기 사용량 검침을 오거나, 우편물을 배달하러 산속 나 홀로 집까지 오는 건 번거로운 일인지라, 뭔가를 대접하곤 했다. 사람이 그리운 연유이자 배려였다. 해서, 검침원이건 배달원이건 소소한 정담 나누는 관계 형성은 되어 있다.
“마침 목이 좀 말랐는데.”
솔순효소 탄 물 한 모금 마신 검침원 김 씨가 덧붙인다.
“목요일에 스마트 미터기 설치 작업반이 올 겁니다.”
“그게 뭔데요?”
“원격측정 전력계량긴데요,”
설명인즉, 소비자와 전력회사 간 쌍방향 통신도 가능하면서 전기 사용량 또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기기로 외국에선 이미 설치, 시행하고 있단다.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는 거네요, 이제.”
표현과 달리 설핏 섭섭함이 묻어 있는 내 표정에,
“….”
김 씨가 말을 접었다가,
“그렇긴 한데,”
끝을 맺지 못한다. 고용 불안을 겪고 있다는 속내로 읽혔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건가, 그럼?”
희망 고문을 줄 심사는 물론 아니다.
“우리 지역 검침원이 아홉인데, 다섯 명만 쓴다네요. 검침이 어려운 산간벽지는 설치와 동시에 원격측정을 하겠다면서도, 별다른 이야기가 아직 없어요.”
갓 두 살 된 아이가 있는, 한국전력 자회사 소속으로 사실상 비정규직이라고 들었다.
“그동안 고생했는데 감안하지 않겠어요?”
“그걸 알아주면 좋겠는데…회사에서는 선생님 댁 같은 단독가옥 요금에 대해 늘 의심하고 있어요. 여름과 봄철 사용량이 비슷하다거나 겨울과 가을 사용량이 다르게 나오지 않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해요. 전력량 측정이 정확하지 않으면 전력 비축량 예측도 어려울 뿐 아니라 요금 책정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적극 단속하고 있거든요.”
“요금 책정 문제요?”
“요금요율이라는 건데요. 피크타임제 적용으로 전기 사용을 일정 정도 통제해 왔듯이 사용량이 급증하는 일일 시간대 요금을 조정해서 일반 세대의 전기 사용량을 회사가 어느 만큼은 줄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여름철 피크타임제는 그런다지만 일일 사용량까지는 좀?”
결국은 요금을 올리겠다는 의도라 여겼다. 사용량을 월별로 적절히 조정해줘 요금이 들쑥날쑥 부과되지 않은 건 김 씨의 작은 배려였다.
“산간벽지 검침원을 먼저 없애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여요.”
“명분이야 선다지만 일자리 앗아갈 정도까지는 아니잖아요?”
“배려하지 말라는 거지요.”
산속집이라 여름철에 선풍기 드물게 돌리고, 온돌방이라 겨울철에 나무 때니 난방비 덜 들었다. 전기 사용량이 계절이나 시간대별로 크게 차이 나지 않는 편이다.
‘스마트 미터기라니…차갑네, 차가워.’
김 씨 가고 나니 더 씁쓸하고,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