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629일 본회의를 열어 재적의원 231명 가운데 찬성 225, 반대 1, 기권 5명으로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여순사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73년 동안 반란이라는 굴레 속에서 하소연조차 빨갱이로 몰릴까 봐 침묵해야 했던 금기의 역사가 새롭게 조명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한 그 누구보다 통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유족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되었다.

 

본지는 여순사건 특별법국회 통과를 환영하며 특별법 취지와 의미를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특별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규종(75) 여순항쟁유족연합회 회장 특별 인터뷰에 이어 두 번째로 그동안 유족과 함께 여야 국회의원들을 찾아 호소하며 특별법 통과에 이바지한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특별기고를 싣는다.

여순 특별법 국회 통과에 이르기까지

“간절한 염원·진실한 집념·적극적인 협력,

그리고 서로의 조용한 신뢰가 힘이었다.”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대한민국 공동체를 옥죄왔던 73년 통한의 역사 ‘여순항쟁’. 특별법 발의 20년 만에 21대 국회를 통과했다.

그 감격을 어찌할 수가 없다. 더구나 이번 특별법은 152명 공동 발의에 여야 합의 만장일치로 행정안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고, 본회의에서 255명 찬성(반대 1명, 기권 5명)으로 통과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여순항쟁 역사를 정의할 때, 제주4‧3사건에 대한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으로 규정해 그동안 ‘반란’이라는 오명을 벗어나게 한 것, 그리고 1954년 4월 1일 지리산 금족령 해제까지를 기간으로 정한 것, ‘여수·순천 지역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일부 지역’이라고 범위를 설정해 우리 지역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과 피해 규모와 여파가 어디까지인지를 밝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특별법이 통과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이 보탠 조용한 힘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유족들의 간절한 염원과 발의자의 진실한 집념,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협력, 그리고 이번만큼은 이루어낼 것이라는 서로의 믿음이 바로 그 힘이었다.

16대 국회부터 여러 번 여순 특별법 국회 발의는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소관 상임위(국방위원회)와 국방부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20대 국회에서 노력한 결과 상임위를 국방위에서 행안위로 이관시킨 성과를 거뒀다. 그리고 21대 국회를 드디어 통과했다.

여기에서는 그 이전 활동과 노력은 생략하고 21대 국회 통과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협력한 입장에서 정리하고자 한다.

21대 총선으로 당선된 전남동부지역 국회의원과 유족, 시민사회단체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있다. (제공 =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21대 총선으로 당선된 전남동부지역 국회의원과 유족, 시민사회단체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있다. (제공 =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여수‧순천10‧19사건(이하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발의 전사

지난해 21대 총선을 앞둔 당시 여순사건 재심 대책위원이었던 서동용 후보(현재 순천광양구례곡성을 국회의원)가 1호 공약으로 ‘여순사건 특별법’을 걸었다. 이후 시민사회는 전남동부지역 총선 후보들에게 ‘여순사건 특별법’을 공동공약으로 요청했고, 그 요청을 받아 소병철 후보 캠프에서 소병철·서동용·주철현·김회재·김승남 후보가 모여 공동공약으로 발표했다.

영령들이 지켜 주었는지 다행히 공동공약 후보 5명이 모두 당선됐다. 그리고 5월 29일 순천대학교 회의실에서 국회의원 5명과 7개 지역 유족회 및 여순 관련 단체 대표들이 참석해 공약 이행을 다짐하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여수‧순천10‧19사건(이하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발의

국회가 개원하고 발 빠르게 2개월에 걸쳐 5분 국회의원이 모여 법안을 만들고 공동 발의 참여 의원들을 모아 7월 28일 발의됐고, 9월 10일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로 법안이 회부됐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애타게 기다리는 여순 특별법안 심의를 위한 진행 소식은 오지 않고, 제주4‧3과 5‧18 개정법 통과 소식만 들려왔다. 그리고 국회가 야당 보이콧으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속타는 소식만 들렸다.

전라남도, 여수시, 순천시 등 지자체와 시·도의회, 유족과 시민단체 호소가 이어지고 소병철 대표 발의자를 비롯해 공동공약을 한 의원들이 집중 노력한 결과 드디어 국회 사상 최초로 12월 7일 행안위에서 주관한 입법 공청회가 개최됐다.

국회 행안위 여순사건 특별법 공청회. (제공 =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국회 행안위 여순사건 특별법 공청회. (제공 =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 공청회

공청회 개최는 법안 통과를 위한 관문을 연다는 신호이다. 소병철 의원실 특별법 담당 보좌관 2명이 지역으로 내려와 이규종 유족연합회 회장을 만나고, 최현주 순천대 여순연구소장과 여수 거주 주철희 여순항쟁 연구학자를 발표자로 의논하고, 보좌관들과 발표자 2분이 모여 발표 내용과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 자료를 만들었다. 공청회 날 본회의에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참석해야 한다는 이유로 안타깝게도 행안위 여순특별법 공청회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위원 참석만으로 개최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청회 개최는 야당인 국민의힘에서 합의해주면서 불참에 대한 양해를 구해왔다고 했다.

공청회는 진지했다. 발표가 끝나자 참석한 행안위 위원 한 분 한 분 질문과 요청이 이어졌고, 발표자들 답변은 명쾌했다.

국회 행안위 법안소위 통과

그런데 또 어찌 된 까닭인지 공청회가 개최됐음에도 불구하고 해가 넘어가도 법안소위에 여순 특별법이 상정되지 않아 속을 태우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행안부가 다른 사건과 형평성을 이유로 여순 특별법 제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행안위 위원장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소병철 의원과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이규종 회장님과 유족 탄원서를 받아 국회 행안위 위원장실을 방문 제출했다. 전해철 행안부 장관과 서영교 행안위원장, 행안위 간사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편지지는 보성 유족이 희생되신 아버지를 그리며 만들어 낸 ‘삼지’라는 사연까지 담았다. 그래서인지 올해 3월 14일 법안 심의 후 4월 22일 행안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여순사건 특별법' 16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 통과 뒤 소병철 국회의원과 유족 등이 서로 끌어안으며 감격하고 있다. (제공=소병철 국회의원실)
'여순사건 특별법' 16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 통과 뒤 소병철 국회의원과 유족 등이 서로 끌어안으며 감격하고 있다. (제공=소병철 국회의원실)

행안위 전체회의 통과

겨우 산 하나를 넘었지만, 여야 합의 만장일치 통과를 목표로 한 행안위 전체회의에 여순 특별법안이 상정되었다는 소식은 오지 않고 다시 속을 태우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순천지역 국민의힘 지역위원장인 천하람 위원장에게 요청해 국민의힘 의원들을 방문 호소하기로 했다. 정운천 국민대통합위원장과 박완수 행안위 간사, 김기현 원내대표에게 전할 호소 편지를 족자에 담아 유족 증언집과 함께 가지고 순천유족회 권종국, 장영찬 유족을 모시고 국회를 방문했다.

천하람 위원장 안내로 정운천 의원을 만나 진정한 국민대통합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에서부터라며 여순사건과 유족들의 73년 통한의 세월을 설명하고 호소했다. 그리고 다시 행안위 간사인 박완수 의원을 만나러 국회를 방문했다. 박완수 의원은 정운천 위원장을 통해 다녀갔다는 소식과 호소를 들었다며 적극 합의 통과에 역할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소위 통과 2개월여 만인 6월 16일 여야 합의로 행안위 전체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법안 소위 야당 간사가 끈질기게 수정 요청하면서 전체회의 직전 오전 내내 소병철 의원과 이명수 간사 간에 마라톤협상이 진행됐다. 한 가지 수정 문구를 넣는 것으로 합의하고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서영교 위원장이 “땅 땅 땅” 망치 두드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복도로 나와 소병철 의원과 우리는 부둥켜안고 감격의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

상임위를 통과했으니 9부 능선을 지났고, 법사위는 법안 발의자인 소병철 의원이 계시니 법사위는 무사하겠지, 그래도 만약을 모르니 하는 생각에 법사위 의결일인 6월 25일 이규종 유족연합회 회장님을 모시고 김종환 순천시 자치혁신과 팀장과 국회로 향했다. 소병철 의원이 법사위 의결 전에 법사위 위원들에게 일일이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호소 인지해서인지 법사위에서는 소병철 법안 발의자 발언을 듣고 박주민 위원장 권한대행이 의결 통과 망치를 두드렸다.

여순사건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유족들이 특별법 통과를 환영하고 있다. (제공 =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여순사건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유족들이 특별법 통과를 환영하고 있다. (제공 = 박소정 여순10‧19특별법제정범국민연대 대표)

21대 국회 본회의 통과

16대 국회 최초 발의 후 20년 만인 2021년 6월 29일, 여순사건 특별법이 21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발의 11개월 만에, 그것도 6.29선언 기념일에 통과됐다. 순천지역 시·도의원들과 유족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환영과 감격과 감사의 마음을 나누었다.

법안 통과까지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여순사건 특별법에 보인 관심과 통과를 위한 노력과 참배 요청 후 참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김기현 원내대표에게 본회의 전 호소문 보내기 등 참 부단한 노력을 했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을 볼 때 비로소 나라가 나라다워진 것 같다.

이제야 애국가가 제대로 들려온다. 하루하루 유족들의 세상 떠나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간절함은 더 깊어졌고, 그 간절함은 지역사회의 염원과 함께 소병철·서동용 의원에게 전해졌다. 소병철 의원이 보여준 최선을 다하는 집념·의지, 치밀한 챙김과 서동용 의원의 진정한 협력은 특별법을 통과시키는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주철현·김회재·김승남 등 전남동부지역 의원들의 노력과 역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지대한 관심, 국민의힘 지도부의 합의 결단이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여야가 합의해 특별법이 제정된 만큼 이제 우리 세대가 할 일은 우리 사회가 대립과 갈등을 벗어나 여순항쟁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을 제대로 규명해 교훈으로 삼고, 화해와 상생의 길을 찾아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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