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윤 전남대학교 의예과 1학년
박성윤 전남대학교 의예과 1학년

죽음을 계급화할 수 있을까? 신분제도가 폐지된 지 몇백 년이 흐른 지금 사람 간의 계급을 논하는 것은 자칫 시대에 뒤떨어져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자는 사회에 암묵적인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말이 사실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죽음 이후에도 이 암묵적 계급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지난 4월 25일 한강에서 의대생이 실종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언론에서는 방대한 양의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사람들은 인재의 안타까운 죽음이라며 진실 규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그의 죽음에 대한 저마다의 추측을 제기하였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에 대한 정보들까지 알려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불과 3일 전 평택항에서 대학생 노동자가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였을 때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애초에 기사의 양이 현저히 적었으며, 이로 인해 사건이 비교적 묻히는 경향이 있었다. 사건을 접하더라도 애도를 표하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다.  나는 이 두 사건이 사회의 암묵적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근거라고 본다. 일각에서는 사건 간에 다른 점이 많기에 단순비교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의대생 실종 사건은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을 만한 일인 데에 반하여 노동자의 죽음은 그렇지 않고, 전자의 경우에는 진상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후자는 그 원인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정말 단지 이러한 이유 때문에 관심도가 높다 해도, 사건명이 이런 식으로 정해진 것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언제부터 피해자의 학과를 알았으며, 그 학과가 사건 이름에까지 드러났던가? 그가 의대생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만취 대학생 실종 사건’으로 보도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의대생 실종 사건은 의문사라는 의혹이 제기되기 전에도 엄청난 관심이 집중된 것이 사실이다. 그 타이틀이 갖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눈여겨 볼만한 점은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이다. 의대생 실종 사건을 계기로 한강 변에 CCTV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수렴하여 서울시장 오세훈이 개선을 약속하였다.

이전부터 이러한 요구가 주장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건이 변화의 중요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이에 반해 청년 노동자의 죽음은 오래전부터 발생하고 있었는데도 실효성이 떨어지는 김용균법 말고는 이렇다 할 개선책이 없다. 국가와 기업의 도움이 있어야 막을 수 있는 노동자의 죽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 두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느껴야 할 점이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사회적 약자의 계층에 있는 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한 대책 수립의 필요성이다.

제도로 원인 명확한 죽음, 막을 수 있는 죽음을 예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제도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둘째로, 언론의 올바른 방향성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기사를 필두로 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여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언론의 바른 역할이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올바른 역할을 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더 나은 내일이 찾아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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