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선을 막 넘자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힐끗 주위를 살피고 사거리로 들어섰을 때 클랙션을 세게 때리며 진짜 갖고 싶은 외제차가 달려들었다. 

“야이, 거지 쌔꺄. 디질라고 환장했냐.”

“X새끼, 쌩까고 있네.”

핸들을 인도 쪽으로 꺾으며 욕설을 날렸다. 간발의 차로 피했다. 행인들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준영은 유유히 속도를 높인다. 세 개의 겹치기 주문에 배달통이 꽉 차 있다. 밀리지 않아 다행이다. 주문자들은 10여 분 늦었어도 도로 사정이 나빴다며 먼저 사과하면 대개는 봐주고 넘어가지만, 음식물이 흘렀거나 식어버리기까지 했으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반품까지 들먹였고, 그런 적이 없지 않다.

세 번째 집에선 아저씨가 받는다. 아, 아는 얼굴이다. 바쁘다 보니, 헬멧을 벗지 않은 게 다행이다. 눈길 마주치지 않으며 음식물을 건넨다.

“맛있게 드세요.”

“준영이 아니냐?”

준영이 돌아섰다가 다시 ‘맛있게 드세요’ 한 번 더 인사하고는 마침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쨔샤, 큰 평수에 사네.’ 그리고는 1년 전의 담임 얼굴을 지운다. 자퇴를 적극 말렸던, 교문 들락거리며 가방 메고 다니던 기간을 통틀어 그나마 기억에 남는 꼰대이기는 했다. ‘준영아, 몸조심해’ 하는 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에까지 들렸다.

아파트를 빠져나오자, 콜이 계속 들어왔다. 이번에도 방향이 같은 겹치기 주문에 준영은 환호했다. 벌써 네 번째다. 오늘은 찐하게 한잔 쏘아도 되겠다, 싶다. 형들과 만날까? 은지를 만날까? 은지와는 다투고 일주일이나 연락 없이 지내고 있다.

배달 앱에 뜬 매장을 향해 엑셀을 당긴다. 국민은행 사거리에 이르는 도로는 모든 방향에서 늘 빡빡하다. 이쪽 차선이 빨간불인데, 저쪽 차선이 비어 있을 때면 차선을 넘어갔다 다시, 이쪽 차선으로 오곤 한다. 저쪽 차선 신호가 풀리고 이쪽 차선으로 넘어와 칼치기하다 신형 아반떼 백미러를 살짝 건들고 만다. 재빨리 사과해야 한다. 쌓인 경험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운전자가 차 문을 열고 내리려다, 신호가 바뀌고 뒤에서 클랙션을 계속 때리자 백미러를 힐끗 보고는 그냥 간다. 이럴 때면 쫄게 된다. 사거리에서 곡예 운전하다 걸려 벌금 4만 원을 내봤지만, 차량 파손은 하루 벌이만으로 안 되기 때문이다. 비 오고 눈 내리는 날의 칼치기는 잔뜩 긴장해서, 장갑 낀 손에 땀이 배기도 한다. 아무튼, 다행이다. 사거리 지나고, 매장에 이르기 전에 배달 동료 형 둘에게 문자를 날린다.

‘망고 형, 바나나 형! 오늘 어때?’

‘오케이.’

‘땡큐, 콜!’

1초도 안 걸리고 동시에 문자가 떴다. 만나는 시간과 장소가 늘 같아서 따로 알릴 필요는 없다. 매장에 들러 음식물을 배달통에 싣자 무게감이 느껴진다. 앱 접속도 곧 땡이다. 기분이 콩콩 튄다. 다시 국민은행 사거리로 접어든다. 빨간불이 떴으나, 준영이 액셀을 끌어 올린다.

그때, 오토바이 뒤쪽을 치받는 굉음이 귓전을 때렸다. 길바닥에 깔렸고, 통증이 왔다. ‘몸조심해’라던 꼰대의 말이 그 순간, 아빠 얼굴보다 먼저 떠올랐다.

소설가 한상준. 전북 고창 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푸른농약사는 푸르다』, 산문집 『다시, 학교를 다자인하다』
소설가 한상준. 전북 고창 생. 1994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에 「해리댁의 망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소설집 『오래된 잉태』 ,『강진만』,『푸른농약사는 푸르다』, 산문집 『다시, 학교를 다자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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