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환 5·18구속부상자회 순천지회장
황은환 5·18구속부상자회 순천지회장

오월은 참 좋은 계절인데도 우리에게 악몽 같은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카시아 꽃향기는 최루탄과 화염병 시너 냄새로 아우성과 총성, 아비규환 그 날의 현장이 연상적으로 작용한다. 지난날 5·18 민주 유공자는 갖은 왜곡과 폄훼로 서러운 곤욕을 치렀고 국가유공자로서 허울만 존재했다.

40여 년의 질곡의 세월 끝에 민주주의는 좀 더 성숙해져 갔다. 국회에서 5·18역사왜곡처벌법이 제정되었고 사단법인 오월 단체는 공법 단체로 격상되어 민주유공자로서 자존감이 살아났다.

매년 개최되는 5·18기념식 행사는 5·18정신계승과 민주화를 위해 장렬히 산화하신 영령들을 추모하는 행사지만, 진정한 5·18진상규명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5월 27일 마지막 밤 도청을 사수하다 장열히 산화한 시민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전남도청 복도의 창문에 총기를 내걸고 보초를 서고 있던 동지들은 계엄군의 일사불란한 작전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를 장착하고 이중 삼중으로 도청을 에워싸고 담을 넘어 쳐들어오고 있었다. 도청 상공엔 헬기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기관단총을 연사하며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백여 명의 시민군은 겁에 질려 지하식당에 모여 대책을 세워보지만 방법은 없었다. 나가서 움직이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결의를 하게 된다. 그리고 각자 웃옷을 벗어 알몸에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까지 서로 번갈아 적어가지만 눈가엔 눈물이 글썽이며 울먹였다.

어떤 동지는 ‘아빠 엄마 미안해!’, 어떤 친구는 사랑하는 여자 친구의 이름을 적으며 ‘사랑해’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가족들이 시체라도 찾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위치에서 마지막 남은 몇 발의 총알을 소진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실탄이 떨어졌다는 것을 안 계엄군은 연막의 작전으로 쳐들어와 연발의 기관총성과 죽음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의 작전이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형체를 알아볼 수없는 시체는 행방불명이 되었고 항쟁을 주동했던 대학생, 동생을 잃은 예비군, 일반인, 노동자, 구두닦이, 그중에 교련복을 입은 고등학생도 신발이 벗겨진 채 피범벅이 된 시체만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어느 동지들은 지하실 문서 캐비닛 속에 숨어있다 아침에 발견되어 살아남았지만 내란음모반란죄, 총기탈취죄로 3년 형을 받아 갖은 고문으로 병신이 되어 있었다. 그 동지는 살아 증언하고 있다.

오월정신은 거창하게 ‘민주, 정의, 인권, 평화’를 말하지만 진정한 오월정신은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저 멀리 미얀마 항쟁은 5·18 정신을 계승한 우리들에게 동병상련의 동지들처럼 보였다. 민주주의 향한 굳건한 항쟁을 적극 지지하며 성원을 보낸다. 하루빨리 미얀마 군부가 폭압을 멈추고 평화의 길로 나서길 바란다.

시간이 지나 우리들이 남긴 오월의 항쟁은 역사가 되었다. 최루탄으로 피범벅이 된 아카시아 꽃향기가 어느 날 달달한 향기로 다가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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