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준철
순천효산고 교사. 시인
지난 24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를 했다. 그가 사퇴하기 전 모 시사 주간지는 그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문, 참극’이란 제목을 달았다. 물론 청와대의 인사 참극을 빗대어 한 말이다. 어쨌거나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었다면, 문창극 사태는 국내 유력 일간지에서 장기간 필력을 휘두른 극우 언론인의 천박한 의식수준을 바닥까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황당하고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나라 엘리트 집단의 허상을 다시금 짚어준 점에서는 하나의 소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가 보수 개신교 장로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3년 전 모 교회 강연에서 “일제 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요, 조선 민족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다.”는 등의 발언을 해서 세인들의 공분을 샀다. 문제가 커지자 그는 신앙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발언임을 강조하면서 언론에서 강연 내용을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진실을 왜곡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이 공개된 이후 보수 진영의 한 목사는 ‘개신교 목사의 상당수(80%)가 문창극 후보자와 같은 신앙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의(혹은 자신들의) 친일적 요소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더 방점을 두어 한 말이다. 또 다른 한 목사는 그의 발언을 ‘성경적 역사관’에서 나온 건강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이라고 부추겼다. 이들은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단지 신앙인으로서 교회 안에서 한 발언이므로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다름 아닌 신앙인의 발언이기에 적절치 못하며, 위험하다.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일제 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다. 그가 신의 계시를 받았든지, 아니면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에 의해 그런 확신에 이르게 되었든지. 그의 직분이 제도 교회의 장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는 역사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을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여 떠들어댄 셈이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의 격’을 자신의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만 꼴이 되었다. 신앙인으로서 이보다 더 큰 죄가 있을까 싶다. 이러한 자의적인 해석은 모든 현상을 신의 뜻으로만 이해하고 규정하려는 목적론적(혹은 운명론적)인 사유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목적론적 사유가 위험천만한 이유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절대적인 해석 아래 인간이 할 수 있는 ‘왜’라는 물음을 봉쇄해버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인간이 거기에 무슨 토를 달 수 있겠는가. 만약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세월호 참사도 ‘하나님의 뜻’일 것이며, 따라서 수백 명의 생떼 같은 생명이 희생된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도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우리 민족에게 시련을 주시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하나님이라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 민족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진실규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라는 물음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오로지 ‘하나님의 뜻’으로만 귀결된다면 진실규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단지 ‘신앙인의 입장에서 발언했을 뿐’인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입에서 ‘더 이상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를 묻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증한 것은 이런 그릇된 신앙관이나 역사관을 방패막이 삼아 자신의 신변의 안전을 도모해온 보수 종교지도자들이다. 그들은 과거 군사독재를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준 시련으로 왜곡 해석함으로써 뜻있는 신앙인들의 정권에 대한 저항과 민주사회에 대한 열망을 배신하고 독재자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던가.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시급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보다 돈을 더 우선시한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사악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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