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하 편집위원, 소나무한의원 원장
박용하 편집위원, 소나무한의원 원장

며칠 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었던 전직 공수부대원이 광주에 왔다. 자신이 쏜 총에 숨진 희생자의 유족에게 사과하기 위해서다. 40년이나 지났지만, 늦게나마 큰 용기를 낸 것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참 오래 걸렸고, 단 한 사람이라는 것 때문이다. 아직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침묵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말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 얼마 전 <시사인>에서 읽었던 ‘김형민 PD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하고 싶다. 702호에 실린 ‘전쟁 자체가 범죄인데 항명을 왜 따지나’이다. 그 이야기에서 김형민 PD는 베트남 전쟁 중 자행된 미라이 마을 학살 당시 민간인 10여 명을 구한 헬기 조종사 톰슨 준위를 소개했다.

할머니부터 네 살 어린이까지 500명 넘는 민간인을 살해하는 미군들 틈에서, 자신의 헬기로 10여 명의 민간인을 구한 톰슨 준위를 ‘인간성을 잃은 좀비들 사이의 유일한 인간’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왕따를 당하고, 법정에서 증언했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학살 현장의 지휘관이었던 캘리 소위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가 가택 연금으로 바뀌었고, 그나마도 3년 후에 사면됐다고 한다. 그 외에 처벌받은 사람은 없다.

캘리 소위는 훗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나는 명령을 받는 소위였고, 그래서 바보같이 그들의 명령을 따랐다”라는 핑계를 댔다고 한다.

김형민 PD의 이야기에서 “전쟁 자체가 범죄”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고, 또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하게 됐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잘못된 명령을 받았을 때, 그것에 따르는 것은 결코 정당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잘못된 명령에 따르는 길을 선택한다. 나중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 잘못된 명령을 따르지 않는것 은 정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영웅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여순항쟁이 다시 조명되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모두 영웅이 되면 좋겠지만, 그건 비현실적이다. 나에게 스스로 물어봐도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런 상황을 만나보지 않아서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더 악랄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사람은 어떤 권력이 주어지면 그것을 더 누리려고 하고, 사람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이번 미얀마 사태에서도 의료 봉사자들에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경찰을 보고 경악하였다.

흑인들을 사망에 이르게 한 미국 경찰들을 봐도 그렇다. 힘 있는 자리라고 해서 인간성을 보고 뽑을 수는 없기에, 부조리는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시스템으로 통제해 야 한다.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 시민의 감시와 행동이 필요하다. 철학 교육이 거의 없는 지금의 교육 과정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이다.

지금은 좋아하지 않지만, 예전에 좋아했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의 대사로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 사람은 못 돼도 짐승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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