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이탈에서 오는 불안감을
성찰과 생산의 시간으로

가족 중 하나가 확진자가 있던 공간에 잠시 머물렀던 것을 계기로 지난 크리스마스 날 어린 조카에게 케익을 선물하고 나눠 먹은 동생네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확진자 두 사람으로 인해 그들의 회사 사람들과 가족, 이리저리 얽힌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검사를 받고 있었다.  다음 날 음성이라는 검사 결과 문자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확진자와 머문 시간이 10여 분 겹친 탓에 가족 중 라나는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가야 했다. 

시에서 이런저런 지침과 함께 컵라면 등 약간의 구호품이 도착되었다. 세 사람이 집안에서 마스크를 쓰고 각기 동선을 달리할 수 없었으므로 한 사람은 시골로 가고, 어디 펜션으로 가볼까 하던 나는 오히려 그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같이 자가 격리를 하기로 했다. 2주 동안 완전하게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자, 무엇을 할 것인가.

불현듯 30대 초반의 습작기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한 문학 동아리에 가입한 채 소설을 끄적거리고 있었다. 지방에서 문인행사가 펼쳐질 때나 이런저런 알음으로 하여 잘 나가는 소설가나 시인이 오면 연락을 받고 나가 그들과 술을 마셨다. 정말로 추앙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던 시절이었다. 

소설을 신처럼 모시던 때라 그들이 우주만큼 위대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 변변한 소설 한 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자각이었다. 모든 것의 고리를 끊고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했다. 

먼저 가입되어 있는 문단의 이러저러한 소속에서 탈회했다. 직접적으로 소속되어 있는 동우회를 기점으로 가입되어 있는 단체는 벌집처럼 많았다. 다음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저러 얽혀 있는 사적인 모임들을 끊었다. 

그러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내가 죽어도 알릴 곳 하나 없겠구나,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한 불안감은 다시 연락을 취하여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싶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게 홀로 되어서 내가 한 일은 ‘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지는 도스토예프스키의 5대 장편을 읽은 것이었다. 

워낙 장대한 작품들이어서 그 권수도 만만치 않았다. 무인도에 내동댕이쳐진 듯 순간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올 때마다 그의 소설을 읽었다. ‘죄와 벌’을 읽다가 잠이 들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의 사건에 휘말려들기도 했다. 두문불출하고 5대 장편을 읽는데 3개월이 걸렸다.

이 글은 대작가의 5대 장편을 읽은 것이 주가 아니고 좀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혼자가 됨으로써 엄습해오는 불안의 극복에 관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모든 관계에서 자유로워졌다.

결코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자신 생의 어떤 것에도 관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 집착한다. 그 관계가 파기될까 때 불안해하고 그리하여 혼자됨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하늘 아래 땅 아래 오직 내가 있을 뿐이다. 지금의 시기에 한번 쯤 상기해 보면서 나를 방치한 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타자와의 관계에만 연연해하거나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2주 동안을 어떻게 살 것이냐고 한숨을 내쉬는 가족들을 보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와 작품을 다룬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소설을 쓰기로 했다. 

다시 실시한 검사에 응하여 음성 판정을 받으면서 2주간의 자가 격리는 해제되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소설 초고를 마친 상태다.

 

소설가 정미경.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순천대학교 강사, 여순연구소 연구원.
소설가 정미경. 2004년 광주매일 신춘문예 소설 당선. 현 순천대학교 강사, 여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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