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시인 서정춘, 팔순 기념 시집 『하류』 출간

 

「여기서부터, - 멀다 / 칸칸마다 밤이 깊은 / 푸른 기차를 타고 /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 백년이 걸린다」 (시 ‘竹篇·1-여행’ 전문 )

「죽편」의 서정춘 시인이 팔순에 여섯 번째 시집 『하류』(도서출판b, 2020)를 출간했다. 노시인의 열정에 중앙에서는 여기저기 상찬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시인 서정춘의 신작 시집 『하류』에는 그 흔한 해설이나 표지 추천사 없이 짤막한 시 31편만 단아하게 실려 있다. 시인 서정춘은 전래 서정시 전통을 고도로 절제된 형식으로 구축하며 높은 문단적 평가를 받는 원로시인”이라며 시인과의 인연, 문단에서 회자되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시집 출간을 축하했다. 그러나 정작 시인의 고향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는 이도 드물다. 

시인 서정춘은 순천 사람이다. 여섯 권의 시집에 나오는 198편의 시와 등단시 1편, 그리고 살아온 이력 곳곳에 순천과 관련된 시와 일화 등이 많다. 제한된 지면에서 몇 가지만 나열하더라도 그는 순천과 떨래야 뗄 수 없는 사람이다. 1941년 순천시 저전동 남산 밑 샘터마을에서 출생했다.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 1969년 29세에 ‘순천 중앙극장 목소리 고운 장내 아나운서 꼬드겨 밤기차 타고’(이시영 시인) 상경할 때까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시인을 갈망하는 문학청년 시절 대부분을 순천에서 보냈다. 평생직장이었던 동화출판사도 고향 친구 김승옥 소설가의 추천으로 입사했다. 2004년 순천 출신 또는 순천 지역을 토대로 활동해 온 문단 원로들에게 수여하는 제1회 ‘순천문학상’도 수상한 바 있다. 

지난 2018년 시인 서정춘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각계 문인들이 시인을 노래한 시와 산문을 엮어 만든 기념집 『서정춘이라는 詩人』(하종오·조기조 엮음, 도서출판b)에서 “칼날 같은 결벽증 때문에 1년에 많아야 두어 편 시를 써”(이문재), “시인이 일평생 수많은 작품을 써도 일편시만 남게 된다는 점에서 이미 선생님은 한국 현대시사에서 선명한 성취를 했다”(하종오), “간명한 절대 미감만을 추구”(조정인),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서 진국인 놈······. 보면 아무 매력도 없는데 순금인 놈. 어딘가에 기가 막힌 게 있어”(고은), “평안도에 백석이 있고, 충청도에 용래가 있다면 전라도에 정춘이 있다”(김성동), “극약 같은 짧은 시”(천양희) 등 여러 색깔의 당대 문인들로부터 최고의 찬사를 받았다. 
 
푸른 기차 타고 고향으로부터 너무 멀리 갔을까? 이번에 발표된 시집 『하류』를 접하면서 너무 멀리 간 것이 아니라, 실상은 고향에 귀의하고픈 시인의 간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시인은 ‘썩은 물 흘러가던 시커먼 판자촌’에 정착하여 ‘배불리 먹고 사는 곳 / 그곳이 고향’이라고 노래했지만 시인 서정춘의 고향은 영원히 남도땅 순천이다. 육신은 서울에서 살면서도 늘 마음은 ‘옷 벗고 / 갈아입고 / 도로 벗고 / 하르르 / 먼 / 여울 물소리’ 따라 고향 가는 그날을 꿈꾸었을 것이다.

두 번째 시집 『봄, 파르티잔』(시와시학사, 2001) 시인의 말에서 “조계산 선암사 뒤뜰에서 헐벗은 몸짓으로 아직 수백 년을 살고 있는 매화 보러 가야 한다”라며 수구초심을 드러냈었고, 출판사 명예퇴직 이후 낙향을 시도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실패한 바 있다고 했다. 지난 10월 오랜 지인 정미경 소설가를 통해 순천대학교 여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시선 10·19』와 여순10·19항쟁 72주년 추념 창작집 『해원의 노래』에 2편의 시를 보내왔다. 이미 발표된 시이지만 1년에 많아야 두어 편 쓰는 시인의 엄격함에 비춰 볼 때 고향의 시대적 아픔에 깊은 공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가 끝나는 봄날, ‘죽편’의 푸른 기차 타고 귀향하는 시인을 상상해본다. 팔순이 넘는 시인 서정춘은 순천 중앙극장 장내 아나운서였던 평생지기와 함께 한반도 끝자락 ‘하류’인 남도땅에 귀의하여, 백 년에 한 번 핀다는 대꽃을 갈망하며 남은 삶을 보낼 것이다. 이미 그가 이미 한국 현대시 100년사에 길이 남을 대꽃임을 모른 채.

「옷 벗고 / 갈아입고 / 도로 벗고 / 하르르 / 먼 / 여울 물소리」 (시 ‘하류下流’ 전문)

 

시인소개

서정춘 시인은 1941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나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竹篇』(동학사, 1996), 『봄, 파르티잔』(시와시학사, 2001),『귀』(시와시학사, 2005), 『물방울은 즐겁다』(천년의시작,2010), 『이슬에 사무치다』(글상걸상, 2016)와 시선집 『캘린더 호수』(시인생각, 2013), 등단 50주년 기념집 『서정춘이라는 詩人』(하종오·조기조 엮음, 도서출판b, 2018)이 있다. 제3회 박용래문학상, 제1회 순천문학상, 제6회 최계락문학상, 제5회 유심작품상, 제5회 백자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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