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는 잘 참는데, 불이익은 못 참는다’라는 말이 있다. 때로는 누군가를 비난할 때, 때로는 자신의 기질을 자책하듯 고백할 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쓰이곤 한다. 그런데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식으로 행동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몇 걸음 떨어져 있는 불의보다는 자신이 당한 불이익이 직접적이고현실적이니까. 물론 무척 이기적인 사람이약간의 양보도 없이 사사건건 따지고 든다면 꼴불견이겠지만, 잘못된 것에 대하여 문제 제기하는 것 자체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고 볼 수 있다. 개개인의 불이익이 모이면 그것이 곧 불의가 되는 법이니까.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불이익은 곧 불공정이고, 불의라 할 수 있을 터이니.
 
그런데 자신이 불이익을 받는 약자에 속해 있으나 그냥 참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불의에 눈 감았다면, 불이익이라도 참지 말자!”
 
대학교에서 학생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3월은 무조건 등록금 투쟁으로 시작했다. 때에 따라서 학원 민주화와 사학비리도 투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그 투쟁은 4월 5월로 접어들면서 사회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와 농민과의 연대 투쟁 등 대정부 투쟁으로 확대되었다. 우리의 문제로 시작해서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 나갔다. 불이익을 참지 않은 것에서 시작하여 불의에 맞서싸우기까지 한 것이다. 다른 조직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이익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화하고 맞서 싸운다. 그리고 나아가 불의에도 맞서 싸운다.
 
그런 것은 연대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했다. 그리고 사실 불의라는 것은 결국은 우리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오게 되어있다. 그것을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 일어나는 것이리라.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게 아름다운 일만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불이익을 못 참는사람들은 소위 말하는 ‘갑’의 위치에 있는경우가 많다. 불의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이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상대적으로 약한 ‘을’에게 참지 않고 화내는 것이다. 그리고 힘이 있을수록, 상대방이 약자일수록 불이익에 대한 개선은 잘 이루어진다.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갑질 문화’가 사라져야 우리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이 개인의 일이아니라 부와 권력을 가진 조직의 일인 경우다. 부와 권력을 가진 조직이 그들이 가진부와 권력을 조금이라도 빼앗길 것 같으면세상이 크게 잘못될 것처럼 과장하고, 똘똘 뭉쳐서 싸운다. 재벌들은 항상 그래왔고 최근엔 검사들과 의사들이 그렇다. 재벌들은 그 방면에서 프로라 그리 시끄럽지 않게, 자신들의 충복인 언론과 경제학자와 관료들을 이용해 매끄럽게 일을 해결해 왔다.
 
가장 요란한 건 그쪽으로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었다. 검사들은 그들이 독점하고 있는 막강한 힘을 조금이나마 내려놔야 하기에 그렇게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것이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들은 법과 정의보다 조직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행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이번 집단행동은과연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일이었나? 하는생각이 든다. 정말로 정부의 정책이 이 나라의 의료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아니면 나중에 수입이 조금이라도 감소하게 될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을 못 참는 것인가? 불의를 못 참는 것인가? 불이익을 못 참는 것인가? 아니면 그사이 어디쯤인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 또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뭉치고 각종 형식의 단체를 만든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들이 불이익에 맞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을 무조건 욕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일 때는 문제가 된다. 물론 그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많고, 서로의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번 의사들의 집단행동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주장이 다 틀린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이기에 더 신중했어야 했다. 의사나 검사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그 자리를 쟁취했기에 부와 권력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평가 항목으로도 사람들의 우열을 완벽히 판단하여 줄 세울 수는 없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만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없다. 약간의 운과 누군가의 도움이 조금이라도 있었기에 그 자리에 올랐고, 우리사회 제도가 그 자리를 더 공고히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불이익에 맞서 집단행동을 할 때 더 신중해야 한다. 약자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것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은 조금의 권력이라도 주어지면 그것을 누리고 싶어 한다. 얼마나 잘 참느냐는 그 사람의 인격이나 기질에 달려 있다. 많은 사람이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누리다가 빼앗기게 되면 참지 못한다. 마치 커다란 불의에 대항하는 것처럼 울분을 토하기도 한다. 어려운 문제다.
 
남을 평가하긴 쉽지만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고 고쳐나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 역시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래 그러하니까 또는 다들 마찬가지니까’라는 변명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 각자는 더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해서 불이익을 참거나 잘못된 것을 비판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불이익 참지 마라. 그러나 살펴봐라. 그것이 약자를 향한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의 이익을 빼앗는 것은 아닌지, 내가 불의를 행하려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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