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권정오(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긴 싸움 끝에 대법원판결을 통해 법적 지위를 되찾았다.

2013년 박근혜 정권이 9명의 해직 교사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6만 조합원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한 지 만 6년 10개월 만이다.

지루한 법정 공방을 벌이던 전교조의 싸움은 촛불항쟁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쉽게 마무리될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촛불정권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 조합원과 뜻있는 수많은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교육 적폐인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직권 취소를 거부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하지 않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의 해결은 결국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었다.

9월 3일, 대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의 의미는 단순히 원고인 전교조 주장을 인용한 것을 넘어 국민의 기본권 문제에 중요한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은 국회가 정한 법률에 의하지 않고 행정입법이나 행정부의 재량에 의해 임의로 제약되거나 규제할 수 없고, 사회공공 복리를 위해 규제할 때도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정신을 확인한 것에 의미가 있다.

7년 전 전교조 법외노조화의 근거가 되었던 노동조합법 시행령 9조 2항이다. 이 대통령령은 87년 6월항쟁과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으로 폐지된 노동조합법상의 노조해산권을 노태우 정부가 임의로 대통령령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적용되지 않던 해당 조항을 박근혜 정권이 전교조에 최초로 적용한 것으로 시행령 자체의 위헌성 여부뿐만 아니라 정권의 법 집행의 형평성 훼손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제 잘못된 해당 조항은 대법원에 의해 무효임이 선언되었고, 그렇게 역사는 6만 전교조 조합원의 긴 싸움 끝에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9명의 해직 교사를 지키기 위해 6만 조합원이 스스로 법외노조의 길을 가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노동조합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년 전교조의 싸움은 노동조합 활동에 끊임없이 지배 개입하려는 정부의 의도에 파열구를 낸 한국노동 운동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판결 하루 만에 단행된 고용노동부의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취소 조치에 따라 9월 4일부터 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되찾고 합법 노동조합으로 활동의 길을 가게 된다.

14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조건에서 법외노조와 법상 노조의 활동상의 차이가 사실상 없었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7년 동안 진보교육감 지역에서 전교조는 정상적인 활동과 노조의 지위를 인정받았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중앙집권적 교육결정체계를 가진 나라에서 전교조 중앙이 교육부와 일체의 단체교섭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은 정상적인 노동조합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노동조합 활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을 활용하여 전교조는 한국교육의 문제를 하나하나 고쳐가는 참교육 실현의 길을 갈 것이다.

이제 전교조는 합법노조로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이즈음 한국교육은 전례 없는 코로나19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지난 9월 15일, 인천에서 어른의 보살핌이 없는 가운데 가정에 방치된 어린 형제가 음식을 조리하다 화재로 크게 다친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마땅히 부모와 우리 사회, 학교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아이들이 온라인 교육이라는 틀에 갇혀 홀로 부실한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이 구조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갔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우리교육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고 모든 이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코로나19 펜데믹이 우리교육의 근본적 모순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낮아진 출산율을 걱정할 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은 채 그저 모든 아이들 교육을 부모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코로나 상황에서도 입시경쟁 교육만이 유일한 지향이 되고 있는 한국교육의 민낯 말이다.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전교조에 많은 사람이 묻는다.

새롭게 출발하는 전교조는 이제 어떤 길을 갈 것이냐고 묻는다.

쉽지 않은 물음에 전교조의 지난 31년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 길을 찾고자 한다.

89년 1,527명의 해직이라는 엄청난 탄압을 뚫고 전교조가 만들어진 그 기저에는 학생들이 있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절규하는 아이들의 삶을 보살피고 교육을 통해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초심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의 교육 불평등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말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는 흘러간 레토릭일 뿐이다.

더 낮게 교육과 소득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있는 아이들과 국민의 삶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전교조로 거듭 날 것이다. 그 중심에 전교조 조합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난 7년 전교조 법외노조화라는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려놓기 위해 전교조 조합원의 손을 굳게 잡았던 이름 없는 시민, 학생, 학부모의 지지와 연대에 보답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지난 1월 15일부터 사흘간 국립순천대에서 전국의 전교조 조합원이 1년간의 교육 실천사례들을 발표하는 제19회 전국참교육실천대회가 개최되었다. 법외노조였기에 행사장소 제공이 거부되는 조건에서 순천이 전국의 참교사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전국에서 오신 천여 명의 교사들이 순천시와 순천대 관계자들의 정말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행사를 무사히 치렀다. 순천시와 순천대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그 환대에 보답하는 것도 전교조의 새로운 출발의 약속임을 잊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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