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간 뭇 생명 달래는 ‘소 위령제’ 지내

 

섬진강 댐 찾아간 구례 농민들, 수자원공사·환경부에 수해 책임 묻다

한국수자원공사(아래 수공) 섬진강댐지사(전북 임실군 강진면, 아래 섬진강지사)에는 모여든 농민들이 터뜨린 분노에 찬 함성으로 가득했다. 섬진강수해참사 구례군대책본부(아래 대책본부)는 ‘500년 만의 폭우’라는 수공 섬진강지사장 발언에 500년이란 근거가 무엇이며, 60년이나 묵은 댐 관리 지침을 이제까지 묵인한 정부부처(환경부)와 수공을 직무유기로 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일 오후 섬진강 댐이 내려다보이는 수공 섬진강지사 앞은 지난달 7~8일 집중호우 당시 댐 방류로 피해를 본 강 하류 축산 농가 등 피해 농민들과 취재진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섬진강수해참사 구례군대책본부는 10일 오전 지난달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양정마을 회관 앞에서 '섬진강 수해 참사 소 영혼 위령제'를 지낸 뒤 구례군청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섬진강수해참사 구례군대책본부는 10일 오전 지난달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양정마을 회관 앞에서 '섬진강 수해 참사 소 영혼 위령제'를 지낸 뒤 구례군청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구례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양정마을은 축산농가가 밀집한 곳으로, 이곳 주민들 역시 마을회관에서 수해 참사로 죽은 소 영혼 위령제에 이어 구례군청 앞에서 노제를 지낸 후 만장을 앞세우고 방류 책임을 지고 있는 수공 섬진강지사로 달려왔다.

“700여 마리 소가 물에 빠져 죽었다. 살아남은 소도 상처가 깊어 고름이 잡히고, 폐에 진흙탕 물이 차서 지금도 하루에 서너 마리씩 죽어 나간다. 우리 동네는 아직도 수해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양정마을 이장은 마을 회관 1층 지붕을 가리키며 “저기까지 물이 차서 지금껏 치우느라 경황이 없어 이제야 소 위령제를 지낸다”고 전했다.

구례 양정마을은 지난 수해로 268가구 가운데 101가구가 침수됐다. 주로 축산농가가 대부분으로 침수 당시 소 1,600여 마리가 축사에 있었다. 주민들은 당시 ‘갑작스럽게 물에 차오르자 축사 문을 열 틈도 채 없었다’고 전했다.

 

양정마을 회관 옆 축사에는 구례군 수해 당시 축사 위로 올라가 살아남은 어미 소가 낳은 쌍둥이 송아지(목에 끈을 묶은 2마리)가 한켠에서 자라고 있다. 당시 살아남은 어미 소는 이후 쌍둥이를 낳고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광장신문
양정마을 회관 옆 축사에는 구례군 수해 당시 축사 위로 올라가 살아남은 어미 소가 낳은 쌍둥이 송아지(목에 끈을 묶은 2마리)가 한켠에서 자라고 있다. 당시 살아남은 어미 소는 이후 쌍둥이를 낳고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광장신문

 

구례읍에서 도로 건너 양정마을 입구. 수해 당시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순천광장신문
구례읍에서 도로 건너 양정마을 입구. 수해 당시 처참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순천광장신문

마을 입구에 비닐은 찢겨 나가고 뼈대만 남은 비닐하우스 안에는 서시천이 범람해 읍에서 밀려온 쓰레기들이 말라가고 있었다.

오이 하우스를 짓던 농민은 “뉴스에 소 이야기만 나오는데 하우스 농사도 다 망했다. 동네가 물에 잠기면서 비닐하우스가 통째로 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물 빠지고 포크레인으로 떠서 제자리에 붙이고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할 일이 태산이다. 600평 농산데 내년 농사도 어렵다. 작물 피해까지 적어도 1억5천만 원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섬진강수해참사 구례군대책본부는 10일 오전 지난달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양정마을 회관 앞에서 '섬진강 수해 참사 소 영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섬진강수해참사 구례군대책본부는 10일 오전 지난달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양정마을 회관 앞에서 '섬진강 수해 참사 소 영혼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수자원공사, 60년 묵은 “관리 매뉴얼 따랐다”

“500년 만에 집중호우 내려… 하늘이 원망스럽다”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 자리한 섬진강 댐. 댐 건너편에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가 자리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전라북도 임실군 강진면에 자리한 섬진강 댐. 댐 건너편에 한국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가 자리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양정마을 위령제를 마치고 수해로 죽은 송아지를 태운 운구차를 앞세워 서시천을 따라 구례읍을 돌아 구례군청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 노제를 끝으로 대책본부는 다시 수공 섬진강지사로 차를 달렸다.

섬진강을 건너 수공 섬진강지사에 도착한 농민들과 취재진은 지사장을 둘러싸고 앞다퉈 질문을 쏟아냈고, 농민들과 죽은 소 앞에 사죄할 것을 촉구했다.

 

섬진강 댐 방류로 수해를 입은 구례군 농민들이 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로 찾아가 지사장에게 수해 책임 인정 등을 촉구하고, 안이하게 대응한 수자원공사와 환경부 등을 성토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섬진강 댐 방류로 수해를 입은 구례군 농민들이 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로 찾아가 지사장에게 수해 책임 인정 등을 촉구하고, 안이하게 대응한 수자원공사와 환경부 등을 성토하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김봉용 대책본부 공동대표는 “섬진강 댐 매뉴얼이 60년 된 게 맞냐”고 질문했고, 지사장은 “기본적으로 매뉴얼대로 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지사장 대답을 들은 김 대표는 60년 된 매뉴얼을 방치한 수공과 환경부를 직무유기라고 성토했고, 이에 따라 방류해서 “구례나 섬진강 유역을 수장시킨 거다. 물폭탄으로 수장시킨 거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수공 섬진강지사장은 “예비방류를 통해서 홍수기보다 3m 이상 더 낮춰서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500년 빈도로, 50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비가 3일을 더 왔다”고 항변하며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답변에 농민들은 “말 같은 소리를 하라”고 오히려 더 크게 분통을 터뜨렸다. 아울러 “갈수기 섬진강 하류에도 물이 부족한데 동진강 등으로는 보내주고, 우리가 요구할 때는 보내주지 않았다”고 섬진강 댐 관개(농업용)용수 저수 기능에도 불만을 제기했다.

섬진강 댐은 일제강점기부터 이어져 오던 댐을 1965년 중력식 콘크리트 댐으로 완공했으며, 이후 1985년 3호기까지 건설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총저수량은 4억 600만t이다.

 

섬진강 댐 방류로 수해를 입은 구례군 농민들이 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로 찾아가 마지막으로 소 위령제를 지낸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섬진강 댐 방류로 수해를 입은 구례군 농민들이 수자원공사 섬진강댐지사로 찾아가 마지막으로 소 위령제를 지낸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순천광장신문

대책본부에 따르면, 섬진강 수해 참사 책임을 규명하고 피해조사와 보상이 시급한데 코로나 19 확산과 계속되는 태풍으로 인해 여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었지만, 실제 주민들의 피해가 제대로 보상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나마 자식처럼 애지중지 기르던 소들이 지금도 매일 처참하게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농민들을 마음으로라도 위로하고 소뿐만 아니라 닭, 돼지 등 수해로 죽어간 모든 생명의 영혼을 달래는 ‘소 위령제’를 지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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