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옥 애벌레 선생
야생동물을 좋아하고 애벌레공작소, 추적자학교를 운영 중이다. 

나이를 먹으면 초저녁잠이 많아지고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난 늦게 자고 새벽도 되기 전에 잠을 깬다. 베개에 머리만 갖다 대면 곯아떨어진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배가 아픈 이유이다.예민한 신경 탓인지 잠을 오래 못 자는 나는 새벽 어스름부터 매미 우는 소리를 듣는다. 시계를 보니 공교롭게도 5시 18분일 때도 있었지. 하여튼 제일 부지런한 참매미가 새벽을 깨우는 거다. 사실 참매미보다 더 일찍 우는 새도 있었으니, 삼 년째 한 마리만 키우는 우리 집의 ‘쪼다’다. 아는 사람 집 닭장의 넘버2를 데려와 풀어놓고 키우는데, 새벽 두 시나 세시부터 울기 시작해 선잠을 깨우기도 한다. 야는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전용 개집(닭장을 안 만들고 개집에 지푸라기를 깔아 주었다)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잠을 청하는 거다. 이 부지런한 닭의 이름은 집사람이 어린이 동화책에 나오는 닭 이름인 ‘쪼다’에서 따온 것이다. 하여튼 우리 집 닭이 제일 먼저 울고, 다음으로 참매미가 동이 트기도 전에 운다. 계절이 바뀌고 초여름, 제일 먼저 들리는 매미 소리는 경기도의 소요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소요산매미다. 엊그제 집중호우가 끝나기가 무섭게 울기 시작하는 말매미와 참매미들은 본격적인 무더위를 예고했다. 

전주천이나 광주천에는 우리나라에서 몸집이 가장 크며, 울음소리조차 제일 시끄러운 말매미가 울어 재끼며 도심의 열기와 시끄러움을 대변한다. 해가 떨어지기 전부터 초저녁에 기름 볶는 소리를 낸다는 유지매미,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열 가지 정도의 매미가 살고 있다. 이래저래 매미가 우는 이유가 다 있겠지마는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이유는 나 결혼해서 애 낳고 싶다는 거다. 것도 수컷이 번식을 위해 목이 터져라 부르는 노랫소리를 사람들은 듣기 좋다느니, 시끄럽다고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 한 달가량의 짝짓기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을 껌껌한 땅속 생활을 한다. 

 

참매미 짝짓기 모습
참매미 짝짓기 모습

가장 잘 알려진 미국의 17년 매미는 천적과의 발생 시기를 달리해서 그런 주기를 갖는단다. 우리나라 매미는 종마다 다른 약충(매미가 되기 전 땅속 생활을 하는)시기를 가지는데 보통 4년에서 7년까지로 알고 있다. 한 달을 살기 위해 5~6년 땅속 생활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한 여름철 열심히 울어 재끼는 매미들의 삶이 진짜인가, 아니면 나무의 즙을 마시는 5년 가까이 되는 땅속 생활이 진정한 매미의 삶인가? 

참매미를 사냥한 산왕거미
참매미를 사냥한 산왕거미

아쉽게도 매미에게 물어볼 수가 없다. 나라면 어둠의 자식인 땅속 생활을 선택하겠다. 다 컸으니 이제 나가서 울어보겠다고 땅 위로 굴을 파고 올라가는 순간부터가 다이내믹 하겠다. 지상으로 나와 나무를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천적에게 노출이 되는 거다. 나무를 올라가 허물 벗기 할 장소의 나무껍질을 꼭 붙들고서 서서히 등껍질이 벗겨지면서 나오다가 잘못돼 날개를 못 펴는 애도 생긴다. 허물 벗기엔 성공했으나 날개를 펴는 한 두 시간 안에 천적에게 먹히기도 하고. 하여튼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참매미 우화 모습
참매미 우화 모습

우화를 깔끔하게 마친 수컷이 노래를 불러 암컷과 지상최대의 목적인 짝짓기를 마치면(아마 한번이 아닐 듯) 남은 건 무엇인가? 암컷이야 알을 낳는다지만 수컷은 딱히 할 게 없어 보이는데 글쎄. 지상에서의 허물 벗기와 목청껏 노래 불러 암컷과 짝짓기 하는 생활이 우리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매미의 전부이다. 이 한 달가량의 보여지는 삶과 5년 가까이 되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땅속에서의 삶. 과연 매미는 어느 쪽의 삶이 더 중요할까? 입이 퇴화하여 먹지도 못하고 오로지 종족 번식을 위한, 이삼일의 어른벌레가 되기 위해 이삼 년을 물속에서 보내는 하루살이. 우리에게 보이는 짧은 기간의 하루살이와 매미와 이를 위해 준비하는 보이지 않는 삶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가? '날개돋이를 위해 어렵더라도 좀 참으며 살자?' 는 아닌 것 같다. 나름대로 삶이 있다. 저 사람은 부족함이 없는 듯 보이나 근심·걱정 투성이고, 허름하게 보이는 저 양반은 세상 남부러울 게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요는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다. 뭐 이런 메시지를 던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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